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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추억’ 대학 … 16년 만에 경찰이 들어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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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는 일종의 ‘성역(聖域)’이다. 내 울타리 안에선 모두가 평온해야 한다. ‘상아탑(象牙塔)’은 공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약속이 한순간에 깨졌다. 그러니까 지난 4일 오후 3시쯤이었다. 평화롭던 캠퍼스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서강대학교’라는 내 이름표가 걸린 학교 정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얼핏 보니 30명은 족히 돼 보였다. 학생들과 ‘금속노조 남부지역회’라는 단체의 조합원들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마리오아울렛 홍성열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철회하라!”

 1980~90년대에 비하면 뜸하긴 해도 학내에서 시위는 종종 있는 일이다. 나는 으레 있는 시위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정문으로 경찰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80여 명쯤 되는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시위대를 뒤따랐다. 경찰은 순식간에 시위대를 막아섰다. 시위대와 경찰 사이 몸싸움이 벌어지고 캠퍼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진압이나 연행 목적으로 대학 캠퍼스 울타리 안에 경찰이 들이닥친 게 대체 얼마 만일까. 전국 대학으로 치자면 99년 서울지하철 노조가 농성을 벌이던 서울대 교내로 경찰이 들어간 게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경찰이 들어온 건 어쩌면 역사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공권력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16년 만에 대학 캠퍼스에 들이닥친 거니까.

 학생·조합원들과 경찰은 학내에서 충돌했다. 30여 분간 몸싸움도 있었다. 학생과 조합원들은 “임금체불과 정리해고를 하는 기업 회장에게 학위를 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홍성열 회장이 학위를 받는 대학 내 성당으로 진입하려고 했다. 학내로 진입한 경찰은 이들을 막아섰다.

 “학교 측에서 퇴거 요청을 했습니다. 정문 앞이 집회 신고 장소인데 여러분들은 불법적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당장 물러나십시오.”

 시위대는 즉각 반발했다.

 “피켓을 들고 평화롭게 시위하는 사람들을 경찰이 막아섰습니다. 학생들을 범죄자 취급하시는 겁니까.”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과 경찰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80~90년대의 기억들이 스쳐 갔다. 당시 캠퍼스는 맵싸한 최루탄 연기가 빠질 날이 없었다. 경찰이 수시로 캠퍼스에 들어왔고, 수업 시간에 몰래 사찰을 하다가 학생들에 의해 쫓겨난 정보 경찰도 많았다.

 십수 년 전만 해도 대학 캠퍼스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큰 충돌이 빚어졌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치열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96년 9월 17일 부산대 교수회가 발표한 성명서가 기억난다. 당시 교수회는 1000여 명의 경찰이 학교 안에 들어와 학생 7명을 연행해 간 것을 문제 삼았다.

 “대학의 권위와 자존심, 자율권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처사입니다. 경찰의 대학 난입은 때로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봤습니다.”

 70~80년대에는 더 암울했다. 그 당시 경찰들은 사무실에 출근하듯 대학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학원 CP(command post)’라는 걸 만들어 놓고는 버젓이 캠퍼스를 활보했다. 전경들도 100~200여 명이 사복으로 변장해 학내 순찰을 했다. 숨 막히던 시절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은 수시로 경찰에 잡혀갔다. 이처럼 학교 안에 주둔하던 사찰요원들은 83년 말 전두환 정권의 학원자율화 조치로 철수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인 철수였다. 이후에도 경찰은 틈만 나면 학내 진입을 시도했다.

 나는 불안하다. 물론 경찰은 “학교 측 요청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선 “지금이 군사 독재 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경찰이 캠퍼스에 마음대로 들어가느냐”며 염려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어쩌면 한 경찰 관계자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 말을 경찰 수뇌부가 새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경찰력이 대학 안에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됩니다. 자칫하다간 ‘대학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가 흔들릴 수도 있어요.”

채승기·유명한 기자

※이 기사는 경찰의 서강대 교내 진입 사건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서강대 캠퍼스’를 화자로 삼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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