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은 합주 못한다? 편견 부수려 뭉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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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8년 전 10·20대 학생들이 만든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이제 세계적 무대에 초청받는 실내악팀이 됐다. 서로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한 멤버 문웅휘·김재영·김영욱·이승원(왼쪽부터). [부산=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함께 연주하기. 즐겁기만 한 일이 아니다. 2007년 결성된 ‘노부스 콰르텟’의 입을 빌려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들은 세계 무대에 등장한 첫 한국 현악4중주단이다. 2008년 오사카, 2009년 리옹, 2012년 뮌헨 ARD 국제 콩쿠르에 입상했다. 지난해엔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모두 한국 실내악단 사상 최초였다. 이들을 지난달 말 부산 연주를 앞두고 만났다. 멤버들은 “현악4중주단은 고된 일이다. 더구나 몇 년씩 함께 하기는 더 어렵다”고 했다. 다음은 각 멤버가 말한 그 이유다.

 ◆싸우고 지친다=“타협하기가 힘들다. 나는 19세에 첫 현악4중주단을 만들었었는데 사이가 틀어져 3년 만에 해체됐다. 자존심 강한 연주자들이 매일 함께 연습하기가 어렵다. 노부스 콰르텟도 위기가 있었다. 2009년 콩쿠르에 나갈 때 갈등이 절정이었다. 한 멤버가 이렇게 연주 하자고 하면 다른 멤버가 반대했다. 사이가 나빠져 서로 눈 깜빡이는 것만 봐도 싫었다. 사이 좋던 친구들과 이렇게 싸우면서 왜 하나 해서 힘들었다.”(김재영·30·바이올린)

 “연습 강도 때문에 힘들다. 보통 연속 8시간씩 연습한다. 독주 8시간과 차원이 달라 32시간쯤 연습하는 느낌이다. 서로 맞추는 데 시간·노력이 많이 들어 지친다. 또 독주를 아무리 잘해도 실내악은 어렵다. 독주에서 ‘미’음과 앙상블 ‘도미솔’에서 ‘미’는 음정이 미세하게 다르다. 이 차이를 알 수 있는 귀, 남에게 맞추려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이승원·25·비올라)

 “포기하기가 어렵다. 나는 현재 독일 함부르크에 머물고 있는데, 얼마 전 함부르크 오케스트라가 협연 제의를 했다. 하지만 콰르텟 일정 때문에 못 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이제 나를 찾지 않을지 모른다. 이렇게 놓친 크고 작은 기회가 많다. 나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개별적으로 포기한 연주가 많다.”(문웅휘·27·첼로)

 “편견이 힘들었다. 결성 이후 줄기차게 국제 콩쿠르에 도전했다. 외국에 나가보면 동양인 연주자는 독주만 잘한다는 편견이 있다.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에서는 뒤처져 있다. 실제로 실내악 콩쿠르에서 동양 팀은 거의 우리뿐이었다. 무대에 서면 느껴졌다. ‘저 젊은 동양팀이 잘할까’하는 시선.”(김영욱·26·바이올린)

 ◆그래도 한다=그런데 왜 굳이 고된 길을 가는가. 노부스 콰르텟은 누가 조직해준 팀이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끼리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넷 중 셋이 이 학교에 영재입학(고등학교 졸업 전 합격)했을 정도로 독주자로도 전망이 밝았다.

 콰르텟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음악 때문이다. “순진해 보일지 모르지만, 현악4중주가 좋은 곡이 워낙 많아서 한다.”(김영욱) “무대 위에서 네 악기가 제대로 합쳐졌을 때 짜릿함, 그게 콰르텟 하는 맛이다.”(문웅휘) 김재영은 두 손의 깍지를 끼어보였다. “악기들이 이렇게 정확히 엮이는 쾌감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사명감이 있다. 한국 연주자들이 합주도 잘한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승원은 “이름을 남길 거다. 이렇게 어렵게 왔는데 더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중요한 무대가 이어진다. 8월 이탈리아 투어를 하고 9월엔 베를린 음악축제에서 한국 실내악단 최초로 연주한다. 베를린필, 에머슨 콰르텟 등 세계적 단체가 초청받는 축제다. 12월 국내 8개 도시에서 연주한다. 그저 음악이 좋아 사서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또 한 번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상 유튜브 novusstringquartet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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