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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분노 폭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워싱턴=장두성특파원】KAL기를 격추시긴 소련의 만행에 대해 미의회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원민주당원내총무 「로버트·버드」 의원은 미국이최근에 소련과 체결한 곡물수출졔약을 취소하라고주장했으며 「케네디」 상원의원은 소련과의 상용항공노선을 폐기하라고 행정부에 요구했다.
「오닐」 하원의장온 『믿을수 없는 야만적 행위』라고 비난했으며「재블로키」의원은 수출협정을 취소할것이냐는 기자들질문에 대해 『어떤조치도 배제하지않는다』 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와같은 발언들은 개별적인 것이고 아직은 행정부의 조치에 직접 영향을 미치려는 움직임은 없다.
그리고 워싱턴의 외교관측통들은 어차피 의회가 요구하는 이러한 조치들은 이미 아프가니스탄및 폴란드사태때 일단검토했다가 효과가 없다고 판정이 내려진것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은 모든 대소 대응책이행정부에서 마련될것으로보인다.
미 행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미소관계는 「레이건」 행정부가들어선 이래 냉랭했던 분위기를 청산하는 단계에있었다.
곡물수출협정이 체결되고, 오랫동안 양국간에 불쾌한 요소로 개재했던 시베리아 파이프건설에 미국이 경제적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고 또 최근에는 소련이 내어놓은 전략핵무기제한협상 (START) 제의를 미국측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은 과연 이번사건을 계기로 모처럼 마련된 이와같은 대소관계의돌파구를 희생시키고 다시 「레이건」 집권 전반기와같은 경화된 관계로 역전할것인가.
미국은 이사건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앞으로 관심의 초점이다.
이날 KAL기사건과 관련해서 기자들앞에 나선미국관리는 「슐츠」 국무장관과 「리처드·버드」 차관보및 「래리·스피크스」 백악관대변인등 세사람이었다.
이중에서 고위층에 속하는 「슐츠」 장관과「래리·스피크스」 대변인은 발언내용뿐 아니라 어조와 표정도 심각했고 「슐츠」 장관은 평소 온화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노기까지 띠고있었다.
그러나 가장 실무진에가까운 「버트」 차관보는시종 실무자적 냉정을 지켰을뿐아니라 미국입장에한가지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이 사건은 미소간외쌍무적사건이 아니고 부분적으로 쌍무적이다.이사건은 한국과의 문제이고 국제사회의 문제다.우리는 지금으로서는 어떤 행동을 취한다 안한다고 말할수없다』 사건 초기의 흥분속에서 한 실무관리가 한 말에 너무 큰의미를 부여하는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실무 고위관리라는 사실때문에 그가 발언에서 그은 미국입장의 이 분명한 한계선은 적어도 1일 아침현재로서는 미국 입징을가장 잘 반영한 것이라고해석할수도 었다.
다음주초로예정된「슐츠」국무장관과 「그로미코」 소련외상과의 마드리드회담에 변경이 없다는 그의 발언도 그런 관측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적어도 사건이 밝혀진초기에 속하는 1일 정오까지는 미국의 표정은노기를 띠되 실질면에서는 그동안 쌓아올린 대소 협상무드를 손상하지않으려한 것같다.
그러나 그런 입장은 조야와 국제적 여론에 따라 변할수있는 것이다.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이워싱턴에 귀임하는 주말에가서야 미국의 행동방향이 굳어지게 될것이다.
비극직후에 손익읕 따지는것은 무자비하지만 워싱턴의 외국기자들 사이에는 이번 사건으로 미국이 적어도 대소 중거리핵무기 제한협상(INF)에서는 큰 득을 보게될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있다.연말부터 서구에퍼싱및 크루즈 미사일을배치할계획을 중요카드로쥐고 대소협상에 임하고있는 「레이건」 행정부에대해 핵무기를 받아들일 입장에있는 서구의 야당과반핵지지세력은 미국을 군사우위론자로비난해왔다.
그러나 민간인을 대량학살한 소련의 이번 만행은 소련이야말로 무자비한 군사우위론자라는 인상을 굳히게되어 여론이반소로 기울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냉혹한 계산은국제관계에서는 다반사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귀추를 지켜보는 현명한방법의 하나는 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오는 말잔치에 현혹되지말고 구체적인 행동을 지켜보는것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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