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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물류대란' 언론책임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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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2주간은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로 빚어진 '물류대란'이 언론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우리 언론들은 하나 같이 정부의 무관심과 늑장 대처가 사태를 통제 불능 상태로 키웠다고 비판했다. 그 비판은 정당하지만 늑장 보도로 사태를 키웠다는 똑같은 비판을 언론도 피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 운송거부 닷새 지나 늑장 보도

화물연대가 운송 거부를 집단 행동화할 조짐은 이미 3월부터 전국 순회 집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명됐다. 특히 4월 27일 화물차 사업으로 빚을 진 화물연대 회원 한 명이 음독 자살하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드디어 5월 2일 포항 등 일부 지역의 화물연대 지부가 화물 운송 거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중앙일보를 포함해 대부분의 신문이 물류대란을 우려하며 본격적인 보도를 시작한 것은 7일이었다.

6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관계 국무위원을 질책하고 엄중한 대응을 지시하고 나서였다. 운송 거부 집단행동에 들어가기 전 화물연대 측의 움직임에 관심을 보인 건 4월 30일자 경향신문과 한겨레 정도였다.

7일자 중앙일보 첫 보도는 1면 톱기사를 포함해 1면의 반 이상을 차지한 2개 기사, 3면 2개 박스기사 등 양적으로는 충분했다. 그러나 분규의 주체인 화물연대의 법적 성격과 사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분명치 않고 기사 간에 상호 충돌하는 혼선도 없지 않았다.

2000년 북한에 송금된 현대상선의 산은 대출금 2억달러가 중국은행 서울지점을 거쳐 남북 정상회담 하루 전인 6월 12일 마카오의 북한 국영은행 계좌로 들어갔다는 14일자 중앙일보 1면 톱기사는 이 돈이 정상회담의 대가였음을 강력히 시사한 특종이었다.

다음날 타지들은 당시 송금을 주도했던 국정원 측이 미국 측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은행을 이용하게 됐다는 속보와 함께 이 기사를 일제히 받았다.

보도에서 특종과 낙종은 흔한 일이지만 지난 2주간에는 빠진 자리가 커 보이는 낙종이 제법 눈에 띄었다. 5일자 타지에는 북한 수용소를 탈출한 여성의 증언을 소개한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가 상당한 크기로 전재됐다.

굶주린 수감자가 시신의 귀를 물어뜯기까지 한다는 등의 참혹한 북한 내부 상황을 소개하고 있는데 중앙일보에는 그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중앙일보의 전재 계약 제휴사로 타지에 비해 기사 서비스를 먼저 받을 수 있는 체제여서 더욱 의아스러웠다.

12일자 조선일보 1면엔 주한미군이 인터넷 군사사이트 운영자 등을 상대로 한 한반도 안보정세 브리핑에서 북한이 연간 5억달러어치의 마약을 수출하고, 위조지폐 1천5백만~2천만달러를 발행하며, 2001년 한 해에 5억8천만달러어치의 미사일을 수출했다고 밝힌 기사가 나왔다.

북한이 미사일과 마약을 수출하고 위폐를 발행한다는 얘기는 새로울 게 없지만 주한미군 당국이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한 것은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중국의 왕이(王毅)외교부 부부장이 한.미,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을 예정에 없이 은밀히 방문한 것은 주목할 만한 외교적 움직임인데 중앙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은 보도하지 않거나 소홀하게 다뤘다.

다만 한겨레만이 12일자 1면에서 중국이 '북핵 강경론'견제에 나선 것으로 보도했다. 그 보도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여타 신문의 무관심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홍보광고 문제삼았어야

이번 盧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한국 기업들이 4억원을 들여 미국의 유수 신문에 한국 홍보광고를 낸다는 사실이 일제히 보도됐다. 나는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미국 방문시 수행취재를 하면서 현지의 여러 신문에 전면광고가 실려 창피스러웠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나라가 민주화되고 세상이 변했는데도 어떻게 22년 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경쟁지들은 9일자 신문에서 1면 박스와 오피니언면의 단평으로 비판기사를 실었는데 중앙일보는 그런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 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