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어떻게 작품화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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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많은 문인들이「만남의 광장」을 찾았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주에서 올라온 시인 박봉자씨처럼 지방에서 일부러 찾아온 문인들도 많았다. 문인들은 그곳에서 우리민족사의 비극이 집약되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았고 현장에서 그 충격을 받아들였다. 문인들이 느낀 충격은 그들의 작품에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언제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
많은 문인들은 그 충격이 작가의 내부에서 충분히 소화 정리된 다음 작품으로 형상화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작품은 나오지 않을 것이며 또 이산 그 자체만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있다.
소설가 한승원씨는 『서울여의도바닥에 시 소설이 무수히 흩어져 있다는 농섞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문인들이 그곳을 찾아간 것은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의 비극이 드러난 현장에서 그 충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적 요구를 문인들이 누구보다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문인들이 작품을 만들어 낼 때에도 이산 그 자체만을 다루는 도식적이고 멜러드라머에 가까운 작품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씨는 자신은 이산문제를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우리민족이 겪었던 비극의 한 부분으로 다루고 싶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의 충격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이 문제를 관찰해 보겠다고 말했다.
시인 조봉일씨도 「만남의 광장」에서의 사연이 바로 시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씨는 『지금 당장 어떤 작품이 나오더라도 그것은 생생한 현장감에는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 될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씨는 흥분이 진정된 후 1년이나 그 이상이 지나서 국민들이 잊어버릴만할 때 깊이있는 작품으로 다루어내면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다만 눈시울을 적시게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게 해보는 작품이 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이문구씨는 『이산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단편소설의 형태로 쏟아지는 것은 바람직 하지못한 현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작가는 현상의 충격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어서는 안되며 현상의 밑바닥을 찾아 정리하여 작품을 만들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우리에게 이산의 문제가 해방전 태평양전쟁때의 징용 강제동원등에까지 소급되어 생각해야하는 민족사적인 문제임을 들었다.
이씨는 지금까지 이산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작가 개인의 체험을 그린 사소설로 많이 나왔으며 그런 작품은 또 그 정도로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고 보며 앞으로의 작품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 시인들의 이러한 생각은 평론가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있다. 김치수씨는 『특수한 문제를 특수한 것으로 끝내버리면 그것은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이거나 감상적인 처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내세웠다.
김씨는 이산문제를 「우리 역사속에 사는 삶의 어려움의 한 양상」으로 포괄적으로 다루어야하며 이산문제만을 따로 떼어놓아서는 테마소설이 돼 버린다고 우려했다.
평론가 채광석씨는 『이산가족의 사연중에는 절실한 것이 많고 그 자체가 작품이 될수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이 되려면 해방이후 우리가 겪었던 분단문제, 사회계층간의 이산등이 그들 이산가족의 삶속에 구체화되는 경우를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러한 작품이 하루아침에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인들의 이같은 생각은 독자들에게 적어도 당장은 이산문제를 다룬 작품을 대할수 없을 것이라는 점올 알려주고 있다.
이산의 충격이 문인들의 가슴속에서 「푹 삭아서」 정리되어 나으려면 얼마나 걸릴 것인가. 아마도 독자들은 1∼2년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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