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조종사 인질 화형 … 요르단, 여성 테러범 보복 처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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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인질로 잡힌 마즈 알카사스베(26) 요르단 공군 중위가 철창 속에서 화형을 당하는 동영상이 3일 공개됐다. [유튜브 캡처, 암만 AP=뉴시스]

모래 빛 전사(戰士) 복장을 한 사내가 흙바닥에 불타오르는 횃불을 갖다댄다. 화염이 수m 앞 쇠창살까지 이어진 기름 도화선을 따라 거뭇한 연기를 내뿜으며 번져온다. 한 평 남짓한 쇠창살 안에는 오렌지 빛 죄수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오는 불길의 공포에 어찌할 바를 몰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화염은 기름을 뒤집어쓴 남자를 순식간에 뒤덮는다. 좁은 쇠창살 감옥은 도망갈 곳도 불을 피할 수단도 없다. 두 팔과 다리로 화염에 저항하던 남자는 결국 불덩이 속에서 무릎을 꿇는다. 잠시 뒤 불길이 사그라지고 검게 타버린 남자의 시신은 맥없이 뒤로 넘어간다. 그 순간 공사용 중장비가 준비한 콘크리트 더미를 쇠창살 감옥 속 남자 머리 위로 쏟아붓는다.

 느와르 영화나 고전 속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3일(현지시간) 공개한 요르단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26) 중위를 산 채로 화형한 현실 속의 장면이다. F-16 전투기 조종사인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이 주도한 국제 동맹군의 IS 공습에 나섰다가 전투기 추락으로 IS대원들에게 생포됐다. 그는 요르단 유력 가문 출신의 독실한 무슬림이다. 2012년 실전 배치 조종사 자격을 취득해 F-16기를 운용하는 무와파크 살티 공군기지의 제1 비행중대에 배속됐다.

 IS가 3일 공개한 22분34초 분량의 동영상은 ‘인간성 말살’ 그 자체였다. 이들은 최대한 잔인한 복수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기법까지 도입해 동영상을 촬영했다. 동영상 내내 이슬람 기도 주문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불길이 번져가는 장면 곳곳을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듯 슬로모션으로 처리했다. 배경음악 사이사이로 불타오르는 화염에 괴로워하는 남자의 비명도 새어 나왔다. 카메라도 여러 대 동원돼 수평과 공중, 클로즈업 등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요르단 조종사의 마지막을 영화처럼 담았다. 지난 1일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後藤健二·47)를 참수한 동영상을 공개한 지 이틀 만이다.

그의 생환을 기다려온 요르단 조종사의 가족과 지지자들이 사망 소식을 듣고 분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암만 AP=뉴시스]

 IS가 참수에 이어 차마 눈 뜨고 지켜보기 어려운 화형 동영상 장면까지 공개한 것은 이슬람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의 공감을 사고 조직의 세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동 전문가 압델 바리 아트완은 4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상은 그들이 극도로 잔인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IS는 협상에는 관심이 없으며 공포에 떨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는 참수에 이어 화형 동영상 장면까지 공개한 IS의 잔혹함과 야만성에 경악했다. 특히 알카사스베 중위의 모국 요르단은 즉각 반응했다. 무함마드 알모마니 요르단 정부 대변인은 4일 오전 암만 호텔 테러에 가담해 교수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이라크 출신 여성 지하디스트 사지다 알리샤위를 포함한 IS 죄수 두 명을 처형했으며, 또 수시간 내로 테러리스트 5명을 추가 처형하겠다고 밝혔다. 맘두흐 알아미리 요르단군 대변인은 앞서 “순교자의 피가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요르단인을 공격한 이번 참극에 비례해 복수하겠다”고 밝혔다. 요르단 수도 암만과 알카사스베 중위의 고향인 알카라크에서는 수백여 명의 시민이 곳곳에서 IS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규탄 시위에 나섰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요르단의 국왕 압둘라 2세를 만나 “이번 사태는 IS의 악랄함과 야만성의 증거”라며 “IS가 추구하는 이념은 (도덕적으로) 파탄 났다는 것을 스스로 보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최준호·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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