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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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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나라의 황씨는 모두 한할아버지 자손으로 알려져있다.
평해·장수·창원의 3대본외에 상주·우주(전주의??현)·회덕·덕산등 10여본이 있으나 모두 한할아버지에서 갈라진 분적종이란 것이 대부분 황씨들의 인식이다.
남한에만 약11만가구 60여만명. 성별인구 순위 17위.
그중에도 창원이 전체의 40%를 차지할만큼 가장 수가 많고 장수 25%, 평해15%등 순으로 이들 세본관이 전체 황씨의 80%를 차지한다.
이들 황씨의 도시조는 신라때 사람 황낙으로 전한다.

<후한 황낙이 도시조>
그는 중국 후한의 학사로 신라유리왕5년(서기28년) 교지국(현월남)에 사신으로 가던 길에,풍랑을 만나 표류, 동해안 경울진군평해에 상륙했다고 한다. 함께 사신으로 가던 구대림(평해구씨시조)과 함께 일행은 평해에 터를 잡고 신라에 귀화, 황낙은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그의 후대에 갑고·을고·병고의 3형제가 있어 기성군(기성은 평해의 옛이름)·장수군·창원백으로 봉함을 받아 각각 평해·장수·창원 세 본관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나 대부분 우리나라 성씨가 그러하듯이 상대의 역사는 실전돼 정확한 개보는 알수 없다. 창원황씨는 고려초 태자기교를 지낸 황온인을. 장수황씨는 시중 황학을, 창원황씨는 황충준을 각각 분적시조로 그로부터 세계를 헤아리고있다.
황씨가 역사에 두드러지기는 고려말이후. 조선조에서는 3명의 정승과 3명의 대제학, 1백71명의 문과급제자를 내 융성을 누렸다.
본관별로는 창원이 문과급제자 78명으로 으뜸이며 장수40명, 평해21명, 제안(황주)9명, 덕산4명, 누덕4명, 우주3명, 상주3명, 선산l명등 순이나 문벌에서는 장수가 부자2명의 영의정과 2명의 대제학등 가장 드러났다.
고려조 황씨 인물로는 정종때 문하시중에 오른 황주량이 있다. 그는 거란의 침입으로 불탄 역대실록을 최충등과 함께 다시 편찬하는등 업적을 남겼다.
조선조4대명재상의 첫손가락에 꼽히는 황희정승은 황씨가 낳은 가장 큰 인물. 본관은 장수다.
고려 공민왕12년(1363년)개성서 태어난 그는 27살에 대과에 급재, 성균관학관이 되었으나 3O살 나던 1392년 이성계가 쿠데타로 새왕조를 세우자 물러나 두문동에 은거했다. 그러나 이성계의 간곡한 부름을 받고 두문동을 나와 새왕조의 벼슬을 받았다.

<여말 이후에 번창>
태종때 5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했고 세종조에 정승에 오른다. 자그마치 18년간의 영의정을 포함, 모두 24년간을 정승으로 있으며 명군 세종을 보좌, 「세종의 치세」를 열었다.
인격과 덕망과 학식에다 경세의 수완을 겸비했던 그의 밝고 맑고 규모있는 행정력아래서 조선조 경제·행정·문화의 기초가 다져졌던 것이다.
그의 세아들이 모두 현달해 그중 둘째 치신은 제중추, 세째 수신은 아버지를 이어 영의정까지 올랐다.
황씨집안 2명의 대제학도 모두 황희정승의 후예다. 황정욱(선조조)과 그의 후손인 황경원 (영조조).
임란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왜의 침략을 예고했던 황윤길과 진주성방어전에서 전사한 충청도법마절도사 황진, 한말 『매천야록』을 짓고 절사한 황현등이 모두 황희정승의 후손들.
창원황씨에서는 고려말 문하평장사에 오른 황석기, 그의 아들 황상(문하찬성사), 조선조의 황재(영조조·대사환) 황인검(정조조·형조판서) 황규고(중종조·좌찬성) 황림(선조조·이조판서) 황섬(선상조·도승지) 황가(중종조·공조판서) 황신(중종조·호조판서) 황흠(숙종조·형조판서)등이 두드러진 이름.
영조조의 이조판서 황하, 순조l년「신유박해」때 순교한 「백회」의 주인공 황영등도 창원황씨다.

<「황고집」의 황순승>
평해에서는 조선개국공신이 된 황령석(지중추원사), 세종조의 대사성 황현, 임란때 권율장군의 총사관으로 공을 세운 황여일, 언어학에 업적을 남긴 실학자 황윤석등이 있다. 황윤석이 저술한 『화음방언자회해』는 국어학연구의 좋은 자료다.
조선조 황씨3정승 가운데 한사람 황충(명종조)은 우주황씨. 상주황씨에서는 황효원(성종조좌찬성·청백리)파 황우한(선조조·대사헌)등이 두드러진다.
제안(황주)황씨는 영조때 「황고집」으로 불린 황순승이 특히 유명한 인물. 성리학자이자 효자로도 알려졌던 그는 기행기벽으로도 많은 일화를 남겼다. 중, 조선조 황씨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없는 이름은 개성명기 황진이다.
해방후 황씨는 2명의 장관(황산덕전문교, 황인성전교통)과 14명의 국회의원, 대학총장(황혜영동국대총장), 2명의 참모총장(황영시현육군,황정연전해군)등 각계에서 융성을 보이고 있다.
국회의 현역 황씨의원은 황인성·황병애·황설(이상민정), 황산성(여·민한), 황명수(무소속)등 5명. 전신민당원내총무 황낙주씨둥 9명의 전의원종 일부는 정치활동규제에 묶여있다. 자유당시절 국회부의장을 지낸 황무수씨는 변호사이면서 목사.
관계에는 황병갑총무처행정관리실장, 황선필청와대대변인, 황철수경기도교육감등이 있으며 학계에 황생서(정치학)·황종흘(공학)등 50여명의 교수가 기라성의 면모.
소설가 황순원, 성악가 황병회·황영규, 가야금의 황병모씨등은 문화예술계의 이름들. 황석연(전대법원판사) 황상구부장검사등 법조계에서도 20여명이 포진하고 있다. 불교계의 황진경스님, 여성교육사업가 황일순(도학학원), 황신덕여사(추계학원)도 알려진 분들이다.
다음주는 「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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