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무릅쓰고 귀국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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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1일 귀국길의 마닐라 공항에서 피살된 「베니그노·아키노」(50)는 언론인 출신으로 필리핀의 명망있는 야당지도자가 되였으나 「페르디난드·마르코스」 현대통렁과의 대립으로 오랜투옥과 잇단 암살위협·해외추방 등의 가시밭길 정치생활을 해온 인물. 필리핀 정치사상 가강 어린나이로 시장·부지사·상원의원 등에 뽐혀 국민들은 그를 「날으듯 재빠른 사나이」로 불렀으며 타협을 모르고 원칙만을 고집하는 성격으로 집권자인 「마르코스」와 충돌이 빈번했다. 국민들은 풍부한 정치 경력과 임기응변에 위트가 있고 필리핀의 민주주의 정책을 위해 애써온 그를「마르코스」의 후계자로 주목해왔다.
필리핀의 야당연합세력인 국민민주연합(UNIDO)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 「아키노」 는 외교분야의 부책임자로 있였다.
1932년11월27일 「아키노」가 태어났을때 그의 아버지인 「베니그노」 1세 또한 필리핀의 상원의원이었다.
「아키노」의 첫번째 사회경험은 불과 「17세의 나이로 마닐라타임즈지의 특파원이 되어 1950년대의 한국동란에 종군한 것이었다. 그는 당시 필리핀 공산반군의 최고지도자와 인터뷰를 가진 최초의 기자로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그후 정치에 투신한 그는 필리핀정치사상 최연소 시장· 부지사가 되었으며 루손섬의 고향 타를락주 지사를 지내기도했다.
정치초년시절 그는 이미 자유당의 사무총장이라는 고위직에 올랐고 「페르디난드·마르코스」현대통령 또한 60년대초 국민당에 가담하기 전까지 이당 소속으로 있었다.
「아키노」 와 「마르코스」는 비록 15년의 나이차이는 었지만 필리핀국립대학 동창이기도 하다.
두사람사이의 대립은 60년대중반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처음 당선된후 「아키노」 가 「마르코스」와 그 부인 「이멜다」 를 비난함으로써 싹트기 시작했다.
67년 「아키노」가 상원의원으로 선출됐을때 나이는 불과 34세였으며 그는 당시 「마르코스」가 이끄는 여당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됨으로써 장차 「마르코스」의 대통령직에도 도전할수있는 인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73년의 대통령선거를 앞둔72년9월 「마르코스」는 「아키노」의 명망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계엄령을 선포,「아키노」를 살인· 불법무기소지·정부전복기도 등 혐의로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7년동안이나 군대의 감옥에 구금된 생활을 계속해오면서도 「아키노」는 자신의 석방을 위한 타협에 응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마르코스」정부에 대한 공격의 화살을 늦추지않았다.
77년 필리핀 군사법정은 「아키노」에게 앞서의 혐의가 유죄라고 인정, 사형선고를 내렸으나「마르코스」가 이를 재심토록 지시, 지금까지 계류되어있다. 「마르코스」는 80년5월 심장질환으로 고통을 받던 「아키노」 의 일시 석방을 허용, 미국에 건너가 치료를 받도록했다.
「아키노」 는 당시 한달안으로 돌아올 것이며 미국에가서 있을때도 필리핀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널리 알리겠다고 공언했으나 이 두가지 모두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았다.그는 하버드대에서 펠로십을 받는한편 매사추세츠공대 (MIT)에서는 연구원으로 일해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아키노」의 「마르코스」 정권에 대한 비난이 점점 늘어나고 필리핀 곳곳에서의 정부측의 반대세력진압행위 등에 대해서도 경고를 일삼자 필리핀당국은 곤경에 처하게됐다. 「아키노」는 지난달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겠다고 밝힘으로써 필리핀 정국을 다시한번 흔들리게 했다.
「아키노」는 미국을 떠나기전 기자들과 만나 자신은 「마르코스」 에 비폭력으로 대항할 것이며 84년으로 예정된 의회선거를 앞두고 민주회복을 위한 투쟁을 벌이겠다고말했었다.
그러나 필리핀 당국은 「아키노」의 여권경신을 거부했고 외국항공기가 그를태워 마닐라에 착륙하는 경우 그에따른 불이익처분이 내려지게 될것이며 암살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마르코스」 반대파들은 대대적인 환영준비를 마치고 정부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간에 「아키노」는 돌아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아키노」는 내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암살자는 바로 「마르코스」 친위사단 뿐이다.나는 내가 그들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귀국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아키노」의 부인이자 필리핀의 부호의 딸인「코라손·코유앙코」 여사와의 사이에 5자녀를 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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