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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시인' 유용주 5년 만에 새 산문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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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진 촬영을 위해 서울 서대문공원을 찾았다. 노숙자 몇몇이 가을볕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십수 년 전엔 여기서 저러고 있었다우." 툭 던진 한 마디가 그의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안성식 기자

문학이 고마운 건 위안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하루보다 더 고단한 누군가의 삶을 엿볼 수 있어, 팍팍한 생에 굴하지 않고 끝내 희망을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우리는 문학을 찾는지 모른다. 그래, 문학이란 건 결국 "사람살이에서 오는 눈물겨움"인지 모른다.

하여 유용주(45)라는 시인은 고마웠다. 힘겹고 버거워 먼 하늘 바라보다가도 그의 글귀 떠올리면 부끄럽고 기뻤다. 내 고단한 하루는 그 앞에서 투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바라봤다. 부끄럽고도 기쁜 건 그의 삶에서 위안을 얻고 활력을 찾아서였다.

열네 살에 집을 나와 징그러운 가난과 싸운 나날을, 중국집.제빵공장.공사장 등등 전전하며 버텨온 지난날을 맑고도 웅숭깊은 문장으로 담은 에세이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가 세상에 나온 건 2000년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네 모두 버거워하던 그때 부끄럽고 기쁜 마음에 우리는 한 노동자 시인의 삶을 찾아 읽었다. 에세이는 60만 부 넘게 팔렸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이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가 산문집 '쏘주 한잔 합시다'(큰나)를 들고 나타났다. 예의 그 맑고도 깊은 문장이다. 고단한 흔적은 많이 가셨지만, 삶을 향한 건강하고도 밝은 몸가짐은 여전하다. 인터뷰를 빙자한 소주 자리에선 넉넉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산문집은 여기저기에 발표했던 짧은 글과 문우의 시집 발문 등을 모은 것이다. 특별하다면 '아름다운 것은 독한 벱이여'라는 제목의 2부다. 자주 소주잔 기울이던 문인 안상학.박남준.한창훈과 함께 4월 부산에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까지 17일 동안 컨테이너선을 타고 간 항해일지다. "평생 처음 외국에 나가본 일"이라며 호들갑 떨었지만 막상 적어놓은 건 "내가 너덜너덜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온통 헤진 투성이다. 꿰맨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감출 수가 없다"는 생을 향한 다부진 각오다.

책 제목 '쏘주 한잔 합시다'는 출판사가 2년 전 저작권 등록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제목에 맞는 필자를 찾았단다. 그때 시인은 "당장은 안 되겠다"고 답했고, 출판사는 꼬박 2년을 기다렸다. 정감 어린 책 한 권, 아니 사람 하나 오랜만에 만났다.

손민호 기자<ploveso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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