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한국을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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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선생님이 뭘 안다고 그래요.”

 일본의 ‘테니스 왕자’ 니시코리 게이(錦織圭) 선수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읽다가 이 말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남미 생활 후 귀국한 초등학생 김군에게 정관사의 불규칙성을 설명하던 중 그가 “외국 친구랑 얘기할 땐 정관사 따위 안 중요한데”라며 중얼거린 말이다. “시험엔 나오니까 외워”라고 응수했지만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순도 100%를 자랑하는 토종인 탓에 제 발이 저렸던 게다. 분연히 떨쳐 일어나 과외교사가 을인 줄 아는가라고 외치는 대신 예문을 바꿔 설명했다. 그만둔다고 해도 토종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이며 바뀌는 건 월수입뿐이니까.

 고백건대 당시엔 김군 같은 귀국 자녀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성문종합영어의 구문을 외지 않아도, ‘돼지꼬리’ 유성음 ‘th’와 ‘번데기’ 무성음 ‘th’ 발음의 차이를 수백 번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입은 이들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말도 글도 다른 곳에 내동댕이쳐진 이들 역시 힘든 건 매한가지라는 걸. 누구에게나 공짜는 없다.

 느닷없이 ‘테니스 왕자’에서 김군 얘기로 넘어간 건 타임지 기사의 두 단어 때문이다. ‘자국을 버렸다(domestic abandonment)’, 즉 자국 일본의 성향을 버리고 미국식으로 훈련한 덕분에 니시코리가 일본 사상 최고인 세계 랭킹 5위로 등극했다는 게 기사의 논리였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 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일본인도 마찬가지라며 자국을 버리는 것이 일본에선 성공의 전제조건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기사를 읽은 후 뒷맛이 씁쓸했다. 현해탄 건너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해서였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도 ‘한국을 버려야 한국에서 대접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지. 지식인으로 대접받으려면 유학 경력은 옵션 아닌 필수이고 말할 때도 영어 단어 좀 섞어줘야 ‘멋있다’고 느끼지 않나. 자국을 버린 경험이 없으면 ‘우물 안 토종 개구리’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대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니시코리 선수는 자국을 버린 게 아니라 자국을 토대로 타국의 장점을 흡수해 스스로를 확장한 거라고. 아무리 버리려고 해도 한국인이 한국을 버릴 순 없다. 파리·뉴욕에서 활동한 화가 김환기(1913~74)의 말,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중략)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처럼.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