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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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20일'문화다양성 협약(Cultural Diversity Convention)'을 채택했다. 각국의 문화다양성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국제협약이 채택됨에 따라 각국은 스크린 쿼터와 같은 자국 문화보호 조치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과의 협상에서 스크린 쿼터를 지키는 데 힘이 실리게 됐다.

유네스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서 '문화 콘텐트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협약'(협약의 공식명칭)을 표결에 부쳐 148개 회원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만 반대했다. 미국으로부터 스크린 쿼터 폐지 요구를 받아온 우리나라도 찬성표를 던졌다.

협약은 "문화의 획일주의에 반대"하며 "각국이 자국문화 보호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협약 제20조는 "이 협약을 다른 어떤 조약에도 종속시키지 않으며, 다른 조약의 해석.적용시 이 협약의 관련 규정들을 고려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협약은 비준될 경우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협약은 국가별로 비준되어야 효력이 생긴다.

BBC는 협약 통과를 "할리우드에 대한 승리"로 평가했다. 협약은 미국 문화의 범람을 막기 위해 프랑스가 주도해 만들었다. 주로 미국 영화와 음반의 일방적 수입을 규제하기 위한 노력이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르네 도네디유 드 바브르는 "모든 국가는 문화주권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 영화 수입의 85%가 할리우드로 흘러들어가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도 자국 문화 보호를 위해 스크린 쿼터를 설정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반면 미국은 "협약 자체도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반박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최근 협약 표결을 앞두고 각국에 보낸 서한에서 "협약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자유화 노력에 어긋나며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협약안 가운데 28곳을 수정하자고 요구하는 제안서를 제출했으나 기각됐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측은 "협약이 스크린 쿼터제와 같은 보호정책을 지키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과의 협상을 맡고 있는 통상교섭본부는 "유네스코 협약과 같은 다자간 협약과 FTA협상과 같은 양자간 협상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스크린 쿼터 유지를 요구해온 영화인들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협약 비준을 촉구해왔다.

오병상 기자

◆ 문화다양성 협약=199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처음 나왔다. 프랑스와 유럽 국가들이 미국 문화의 범람에 맞서 자국 문화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제안했다. 각국이 스크린쿼터 문제 등으로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겪던 상황에서 국제기구 차원의 공동대응안을 만든 것이다.

생물에서 종(種)의 다양성이 있듯이 문화에도 민족.언어.지역별 다양성이 있으며,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다양성에는 기본적인 가치와 신념, 언어와 표현 등이 모두 포함된다. 문화 분야에서는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에 비유될 정도로 비중 있는 협약이다. 30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발효된다. 비준하지 않은 국가에선 구속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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