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노총의 강경 투쟁노선을 우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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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동계의 잇따른 비리 사건으로 불거졌던 민주노총의 내홍(內訌)이 결국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 출범으로 이어졌다. 진행 양상을 보면 민주노총이 앞으로 대화보다 투쟁을 앞세우는 강경파에 의해 주도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그 여파가 노동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최악의 교착상태에 빠진 노정(勞政) 관계를 더욱 꼬이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구속으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민주노총은 지도부 총사퇴를 놓고 심각한 계파 갈등을 겪어왔다. 하반기 투쟁을 마무리하고 내년 1월 총사퇴와 함께 선거를 치르자는 지도부에 대해 강경파들은 '즉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반발해 왔다. 지도부가 갑자기 사퇴한 것은 강경파의 공세에 밀린 결과라 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이수호 위원장의 '대화와 투쟁 병행' 노선은 '투쟁 중심'의 강경파와 계속 부딪쳐 왔다. 올해 2월 노사정 대화 참여를 결정하기 위한 대의원대회가 강경파들의 물리적 저지로 세 차례나 무산될 정도였다.

비정규직 법안 처리, 노사관계 로드맵 등 노동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노동계와 정부는 대화마저 끊겨 있다. 여기에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정부와 노동계는 번번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계획한 11월 1일 총파업 찬반투표, 전국 노동자 대회,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반대 등 하반기 투쟁도 강행될 가능성이 크다.

출범 10년을 앞둔 지금 민주노총은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무리한 정치투쟁과 집단 이기주의로 불신을 자초했다. 노동계 비리에서 비롯된 이번 사태는 진정한 반성과 자숙, 비리를 차단할 제도적 장치 마련을 통해 노조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강경 투쟁의 빌미로 삼는다면 명분도 없고 노조의 설 자리만 더 좁힐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기만 한데 걸핏하면 총파업을 들고 나오는 강경 투쟁이 무엇을 얻고,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