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전쟁이 끝나면 아빠가 돌아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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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베를린에서 온 편지
이레네 디쉐 지음, 한미희 옮김, 웅진주니어, 140쪽, 8000원
종이옷을 입은 사람
김진경 글, 김호민 그림, 문학동네어린이, 144쪽, 7500원

어느 누구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극적인 역사는 개인의 가족사에도 아픈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은 서로 지켜주려는 가족간의 사랑이고, 또 시간이다.

역사의 비극 속에서 피붙이를 잃은 가족. 그 시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담긴 동화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베를린에서 …'는 나치시대가, '종이옷을 …'은 한국전쟁이 배경이다.

'베를린에서 …'는 1938~45년 한 유대계 헝가리 집안이 겪은 불행을 그리고 있지만, 그 전개 방식은 코믹하다. 비극을 비극인지 모르는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통한다.

베를린 외무부에서 일하는 아빠와 함께 살던 페터는 독일의 유대인 박해가 점점 심해지자 헝가리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보내진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착하는 아빠의 편지가 페터의 유일한 낙이다. 편지 속엔 영화나 파티 등 즐거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어느 날부터 아빠는 편지를 타이프로 쳐서 보내기 시작했고, 페터는 '이즈음 베를린 사람들은 축제만 하는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할아버지 서재에 들어갔던 페터는 책상 위에 놓인 타이프와 쓰다 만 편지를 발견한다. 아빠 라슬로는 이미 처형됐던 것이다.

이들 3부자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온 불행에 인생을 맡기지 않았다. '불행은 행복과 행복 사이에 끼어있는 것'이란 믿음이 희망을 잃지 않게 했다.

이 책은 독일의 유대인 말살정책을 정색으로 비난하지 않는 대신 비꼬고 풍자하는 장면을 군데군데 집어넣었다. 페터가 베를린에서 아빠와 함께 살던 시절. 외국인 억양이 드러날까 무서워 아빠는 식당에서 주문도 못한다. 페터는 자기 맘대로 주문하고 신이 났다. 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페터는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유대인들을 만나면 메롱 하고 혀를 날름 내밀어 줄 작정'이었다.

반면 '종이옷을 …'은 한국전쟁의 비극이 빚은 솔이 가족의 갈등을 무겁게 풀어놓고 있다. 한국전쟁 때 빨치산으로 몰려 가족을 모두 잃은 할머니. 새 남편을 만나 낳은 아들인 솔이 아빠는 외가 친척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행정고시 합격이 취소됐다.

이들 가족의 비극은 만리장성 공사에 얽힌 '맹강녀'의 전설에 빗대 그려진다. "전쟁이란 수많은 사람을 묻고 세워지는 만리장성 같은 것"이란 이유에서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들 가족의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그 화해 과정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어차피 모든 상처엔 흉터도 남는 법.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겠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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