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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컹한 바다에 둘러싸인 대륙에서 모험을 시작하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롱고롱고는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곳, 태평양 남동부의 이스터 섬에서 발견된 고대 문자입니다. 롱고롱고는 원주민어로 ‘노래’라는 뜻입니다.

롱고롱고를 해독하는 날 초고대문명의 실체가 밝혀질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펼쳐낸 하지윤 작가의 판타지 ‘판게아 4-롱고롱고의 노래’ 연재를 시작합니다.

[일러스트=임수연]

초대륙 판게아로의 초대

안녕, 난 수리야. 고고학자 요한슨 박사의 아들이지. 나의 친구 사비는 물리학자인 허블 박사의 딸이고, 마루는 천문학자 휠러 박사의 아들이야. 우리의 공통점은 사라진 문명을 찾으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는 거지. 마야·잉카·아틀란티스와 우르크(수메르)·롱고롱고(이스터 섬)…. 그런데 이런 문명은 왜 사라졌을까? 진짜 사라진 것일까? 혹시 지구 어딘가에 비밀스럽게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는 이야기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어. 어느 날 세 아빠가 사라져. 우리는 아빠를 찾으러 떠나게 되고, 아빠는 마치 우리가 따라올 줄 알았다는 듯 매번 친절한 단서를 남겼지. 첫 번째 단서는 우리의 아지트 ‘오리온’에서 받은 이상한 모르스 암호였어. ‘4월 5일 04시 15분, 여기는 수러즈. 신호가 들리는가? 긴급구조 요청. 비행기가 추락했다. 내 이름은 마리다’였지. 그런데 이건 무려 2차 세계대전 때의 신호였던 거야!

두 번째 단서는 ‘우리는 급히 시발바로 떠난다. 110툰 18킨 111툰 14킨 1우날 그리고 제로섬’이었어. 고대 마야의 역법을 이용한 암호였고, 우리는 이 암호가 위도와 경도 5,125와 5,200의 존재하지 않는 섬이라는 걸 알아냈어. 이상한 건 시발바는 멕시코였고, 제로섬은 버뮤다 삼각지대였다는 거야. 어쨌든 우리는 세 아빠를 찾으러 시발바로 갔어. 가까스로 찾아낸 아빠는 또 사라지고 말지. 아빠를 찾으러 잉카의 마추픽추, 이어서 아틀란티스로 가지만 역시 가는 곳마다 아빠는 사라져버렸지. 자, 이번에 이스터 섬이야. 아빠가 또 단서를 주셨거든.

참, 나는 항상 꿈을 꿔. 내 꿈은 예지로 가득하고 현재와 과거를 오락가락해. 나는 사라진 문명을 모두 모아 새로운 초대륙 판게아를 완성하고 아빠도 완벽하게 찾고 싶어. 모험으로 가득한 이 여행에 소중 친구들을 초대 해볼까 해. 이제 출발해볼까?

움직이는 단서

‘윙윙 탁탁 윙윙 탁탁’. 수리는 추락하고 있었다. 언뜻 벌집을 박차고 나온 벌들의 함성소리 같기도 한, 어쩌면 단말마의 낯선 기계음이 섞인, 빛의 다발이 회오리 치는 소리는 수리의 몸뚱이를 야무지게 팽이 돌리듯 하고 있었다. 빛의 무더기 사이로 언뜻언뜻 명멸하는 찰나의 그림 혹은 글자 같은 기호들이 획획 튀어나와 수리를 마구잡이로 찔러댔다.

“아아아.”

수리는 현실도 꿈도 아닌 새로운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는 신호를 듣고 있었다. ‘윙윙 탁탁 윙윙 탁탁.’ 그때, 몸의 형체가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아닌 난생 처음 보는 질감으로 수리 아빠가 나타났다. 그래도 따스한 느낌이었다.

“올 줄 알았다. 수리야.”

수리는 물컹하면서도 단단한 아빠의 품에 안겼다.

“아빠. 그 동안 어디 계셨쪄요?”

아빠는 어리광 부리는 수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저길 봐라. 수리야.”

“아, 아빠. 저건… ”

“지금 내가 있는 곳이고 앞으로 네가 올 곳이기도 해.”

그곳은 분명히 대륙이었다. 우주에 떠있는 대륙이었다. 그런데 물컹한 액체가 꼼꼼히 포위하고 있었다.

“설마 물은 아니겠죠? 물이 대륙을 납치한 거예요?”

“바다.”

“진짜 바다요? 물을 주성분으로 하고 3.5%의 소금과 미량의 금속을 함유한 그 바다요?”

“자, 나를 따라와라.”

아빠는 수리의 손을 잡아 비틀었다. 순간 온몸이 뜨거운 불길에 타는 듯 엄청난 전류가 일어나 몸뚱이가 폭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들려온 눈을 떠보라는 아빠의 목소리는 자상했다. 수리는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전혀 본 적 없는 새로운 문명의 도시였다. 새들이 한창 예쁜 짓을 하며 새침하게 날고 있었고 바람은 새들 사이를 오가며 장난꾸러기 남자애처럼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앗. 바다가!”

수리는 깜짝 놀랐다. 땅과 바다의 위치가 지구와 달랐다. 바다가 하늘에 떠있는 것이다. 그때 바다가 엘리베이터 추락하듯 내려오더니 수리를 집어삼켰다. 얼마나 지났을까, 앗! 하고 소리치며 눈을 뜬 수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람 얼굴 모양의 거석이 수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위아래를 훑어보니 얼굴 크기만 10미터는 되어 보였다. 아빠를 불러봤지만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수리는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실감했다. 물컹한 바다 속이었다.

“물과 3.5%의 소금과 미량의 금속과… 또 무엇이 포함돼 있기에 이렇게 물컹한 바다가 만들어질 수 있지? 흠. 아니 저건?”

돌로 만든 건축물, 피라미드였다. 지구 곳곳의 문명권에 반드시 나타나는 피라미드다. 얼굴 거석은 피마리드 입구에 버티고 있었다.

“인공 구조물… 사라진 고대 문명의 흔적이야. 물컹한 바다가 이 문명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야. 아, 어떤 문명이었을까?”

갑자기 ‘윙윙 탁탁’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수리는 더럭 겁이 났다.

“살려줘요!”

그러나 수리의 작은 외침은 물컹한 바다가 꿀꺽 삼켜버렸다.

[일러스트=임수연]

거인들과 추락하다

수리는 혼자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굴이 시커먼, 귀가 엄청 큰, 키 큰 거인들과 떨어지고 있었다. 거인들은 저마다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남자의 것은 크고 못생긴 낯짝에 어울리지 않게 챙이 넓은 밀짚모자, 여자는 크고 불그죽죽한 낯짝에 어울리지 않게 원숭이 궁뎅이 만한 뚜껑모자였다.

“시커먼스! 귀커먼스! 키커먼스! 어이 안녕! 난 쑤~리라고 해.”

긍정 DNA를 소유한 호모사피엔스의 대표 주자 수리는 능청스럽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희한한 낯짝의 거인들은 수리의 인사를 받아주기는커녕 입을 크게 움직거리며 무언가 끝없이 떠들고 있었다.

“주문을 외우는 거야? 어이, 아저쒸, 아가쒸, 거인들.”

하지만 거인들은 수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수리는 입을 삐죽거렸다. ‘말도 안 통하는 거인들과 동행이라니. 쳇. 그래도 계단을 오르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자. 그런데 이 물침대 같은 편안한 과학은 뭐지?’ 수리와 거인들은 물컹한 코어를 통해 낙하하고 있었기 때문에 속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편안함도 잠시, 불현듯 눈에 보이지 않던 코어가 사라졌다. 수리 얼굴의 모든 선과 구획이 무너지며 기절할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아. 언제까지 떨어져야 하는 거야?”

“좀 조용히 해. 멘탈 좀 챙겨.”

수리는 믿을 수 없었다. 함께 떨어지고 있는 거인이 자기를 나무라는 소리였다.

“하하. 인간도 아닌 것이 말을 하네.”

수리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러자 거인이 그의 무지막지 너부대대한 손바닥으로 수리를 뻥 날려버렸다.

눈을 떴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소리도 아닌 여자의 소리도 아닌 본래의 노래였다. 원시의 노래였다. 화려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장송곡인가? 그럼 여긴 무덤… 아니 저승이에…요?”

수리는 누가 들을까 소리쳤다. 그러자 방금 자신을 내팽개쳤던 괘씸한 거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 시커먼스, 귀커먼스, 키커먼스 어떻게 된 거야?”

거인의 들창코에서 허연 콧김이 푹푹 뿜어져 나왔다.

“콧구멍… 크다.”

“꼬맹이가 아직도 시끄럽구나. 에잇.”

거인은 돌덩이만한 주먹으로 수리의 머리통을 무지막지 내리치려고 했다.

“앗! 시커먼스. 귀커먼스. 키커먼스. 혹시 브라키라사우루스 샘 알아? 많이 닮았다. 혹시 쌍둥이? 하하. 기발한 망치와 돌주먹 남매! 어쩜 이렇게 똑같냐?”

거인은 브라키라사우루스라는 말에 즉각 반응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 수리의 천재적인 순발력. 브라키라사우르스. 브라키라사우르스,”

수리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거인은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갸웃갸웃했다. 그 와중에도 나머지 거인들은 여전히 경건한 자세로 입을 모아 노래하고 있었다.

“너희 거인 엔젤스 합창단… 맞지?”

거인은 또다시 돌주먹으로 수리를 내리치려 했다. 수리는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브라키라.”

그러자 거인은 또 고개를 갸웃했다. 한창 재미있어 하던 수리는 곧 거인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거인들의 노랫소리 때문이었다.

“이상하네. 이 노래. 누가 자꾸 생각나네… 그래 사비야. 사랑해 사비야….”

수리는 상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사비를 자꾸 불렀다. 그 노래는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음률보다 언어에 치중한 노래였지만 지상에는 없는 노래였다. 그 언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인류가 알고 있는 언어는 더더욱 아니었다.

“사라져버린 언어구나.”

수리가 꿈꾸듯 헛소리를 할 때 홀연히 계단이 펼쳐졌다. 계단은 목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25개의 목판은 서로 나사나 못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요철로 이음새가 다물어지지도 않았다. 각각 제 마음대로 허공을 춤추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다리야? 혹시 펜로즈의 계단(Penrose Stairs)은 아니겠지? 나의 흑역사가 떠오른다.”

수리가 조심스레 한 발 내디뎠다.

“오오, 이런 흔들리잖아. 설 수가 없어. 사비야, 마루야. 나 요절하겠어. 여자는 많고 우주는 넓은데.”

엄살을 부리던 수리의 눈에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 혹은 글자 같은 것들이 돋을새김으로 조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또 뭔가 나타났어. 그래. 이건 상형문자야. 유레카. 유레카.”

수리는 기쁜 나머지 25개의 목판을 다다다다 뛰어올랐다. 꼭대기에 올랐다고 여겼지만 아니었다. 25개의 계단을 계속 돌고 있을 뿐이었다. 쿵쿵 쿵쿵 희한한 낯짝의 거인들이 목판을 밟고 올라오고 있었다.

“안 돼, 오지마. 그냥 노래나 불러,”

수리는 팔을 휘휘 저으며 거인들을 말렸다. 거인의 어마어마한 무게 때문에 계단이 무너질 게 뻔했다.

“아, 제발. 너희한테 밟혀 죽을 것 같아!”

거인들은 쿵쾅쿵쾅 요란하게 올라왔다.

“어이, 거인들. 살살 좀 하지. 기분 나빠지려고 해.”

거인들 때문에 목판은 그네처럼 좌우로 휘이잉 휘이잉 흔들렸다.

“거인이 그네를 타네. 아니야. 놀이공원의 바이킹이야. 바이킹,”

거인들은 이미 바이킹이 되어버린 목판을 성큼성큼 밟으며 단숨에 뛰어올랐다.

“오 마이 아빠. 제발.”

120센티 정도의 목판에 모두 올라설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지막 거인이 도착하자 25개의 목판은 마치 태양의 빛이 부풀어오르다 그 비늘이 온 우주로 파파팍 튀듯 넓은 반경으로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윙윙 탁탁 윙윙 탁탁’.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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