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교포와 일본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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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사할린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그곳에 버려진 우려동포들의 원상회복문제가 정부차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일본정부는 사할린억류 한국인동포귀환문제를 적극 지원키로 하고 가까운 시일안에 이에 관한 소련측의 진의를 타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동경으로부터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또 사할린거주 한국인들의 소련출국이 허용될 것에 대해 수용태세 등도 검토중이라고 한다.
이 같은 방침이 얼마나 성의가 있고 적극성을 띤 것인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일본측의 태도 변화를 「일본의 공식각성」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소련땅이 된 사할린의 한국인들은 일제침략전쟁의 희생자들이다. 39년부터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이 곳 탄광과 건설공사장의 노동력으로 투입된 한국인은 4만3천명을 헤아렸다. 종전 후 일본은 일본사람들은 「자국민」이라고 해서 데려오고 한국사람은 교섭대상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일본은 끌어갈때는 「자국민」속에 한국인을 포함시켜놓고 데려올때는 「타국민」이라고 송환교섭조차 않는 모순을 범한 것이다.
당초 4만3천명이었던 사할린동포는 이제 2세·3세를 합쳐 7만여명이 된다. 이 가운데 아직 무국적자로 남아있는 사람은 9백70가구, 3천5백6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북괴나 소련측의 집요한 회유와 압력을 무릅쓰고 귀국의 집념을 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다.
종전 38년이 되는 동안 일인여자와 결혼하는 방법 등을 통해 사할린을 탈출한 동포도 상당수에 이른다. 정부도 나름대로 이들의 송환을 위해 일본측과 교섭을 벌였지만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은 옛 식민지를 모두 포기했고 당시의 한국인은 일본국적을 상실한 외국인이므로 참견할 바가 아니라는게 일본측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얼마나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것인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할린동포는 일제가 징용이란 법적가면을 쓰고 사실상 납치를 해서 전쟁에 보낸 한국사람들이다. 문제의 ?각은 여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황국신민」이니 「내선일체」니 하는 명분을 붙여 끌어가고는 사정이 달라졌다고 나 몰라라 발뺌을 하는 것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건 정치도의에서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은 지금 이순간에도 사할린의 한국인을 원상회복시킬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동안 일본이 이 문제에 소극적이였던 이유는 그들이 일본에 정착할 것을 겁내서였다고 한다. 송환할 경우의 비용문제도 있었다고도 한다.
송환에 소극적이었던 이유야 무엇이건 사할린교포문제의 원인이 일본에 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상 일본은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우기 소련도 지방관리의 말이라고는 하지만 사할린교포의 송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지 않은가.
우리로서도 자책하고 반성할 점은 많다.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끊긴채 기민이된 이들의 처지를 놓고 한 타령만 했을 뿐 문제를 정정당당하게 풀어나가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생전에 성묘라도 하게 해달라』는 사할린동포들의 소박하고 눈물어린 원망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소련측의 반응이나 일본정부의 움직임으로 보아 사할린교포문제는 어쩌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모처럼 맞은 계기에 문제를 말로서가 아니라 현실로 풀어가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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