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여성」이 어쨌단 말인가…제발좀 그만 들먹였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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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린이 문제, 청소년 문제, 노인문제에 이어 뭔가 요즈음은 우리의 사회적관심이 슬금슬금 중년여성의 문제로 쏠리고 있는것 같다.
매일매일 접하지 않을 수 없는 신문이나 라디오,또 텔리비전은 말할것도 없고 일반 시정인들의 언사에서도 그들이 얼마나 여성, 특히 중년여성을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나도 어쩔수 없는 중년여성, 말하자면 낭패감과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래서 비틀릴대로 비틀린 그중년여성이기 때문일까, 어쩐지 중년여성에 대한 오늘의 그 떠들썩한 관심이 오히려 짜증스럽기만 하다.
괜히 비위가 상하고 부아가 끓어오른다.
그것은 그 관심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그무엇, 말하자면 뭔가 설명할수 없는것들, 중년여성을 바라보는 불순한 시선,그 야유, 그리고 결코 달갑게 받아들일수 없는동정, 아니면 악의들이 문득문득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구서구석에서 자기들의 잘못을 몽땅 중년여성에게 덮어씌우고 있는듯한 느낌,오늘날 우리사회의 모든 병폐가 모두 이나라 중년여성의 책임인양 이야기의 내용을 몰아가고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삐뚤어지는것도, 이나라의 노인들이 외로와지는 것도, 모두 집에서 어머니가 잘못 키우고 며느리가 시부모를 따뜻이 모시지 않는데서 오는것으로 몰아붙이고, 물가가 오르고 땅값이 미친듯이 치솟는 이유도 모두 주부들의 농간이라고 손가락을 곧추 세우는가 하면 오늘날의 도덕적 타락이라든가 성적 문란의 현장도 유난히 중년여성을 중심하여 그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하기는 온갖 지혜와기지, 그리고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젊은날의 그 불안을 극복하여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지금의 자리를 스스로 쌓아올려 굳힌 중년여성의 그 느긋하고 확고부동한 자리가 은근히 심술스러울수도 있으리라 참말로 아무리 흔들고 또 흔들어도 절대로 무너질리 없다는 확신에서 답답하고 짜증스런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마음놓고 집적거릴수도 있으리라 그도 아니면 특별한 울타리도, 그렇다고 뚜렷하게 조직된 힘도 아무것도 가지고 있을리 없는 중년여성의 그 허술한 입장이 어쩐지 만만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리라.
아뭏든 그것이 비록 진정한 염려나 선의에서 출발한 관심이라 하더라도 내 문제가 누군가에 의해서 들춰진다는것은 여전히 불유쾌하고 피곤한 일이다.
거기다 더욱 견딜수 없는 일은 그냥 이런대로 이렇게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고싶은 중년여성을 향해서『지금 당신이 살고있는 모습은 여성으로서의 참된 삶의 모습이 아니다. 당신은 참으로 무능하고 무력한 여자다』하고 자꾸만 잠든의식을 깨우고 있는 처사다.
얄팍한 월급봉투를 가지고 요리조리 쪼개가며 저축을 하고, 비록행주냄새가 배어있는 마디굵은 손이라도 그 손으로 어리석은 남편, 못난자식들을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가꾸어내는 일 ,싸구려가구에 기름걸레질을 하며반드럽게 윤을 내는일, 김치맛이좋다는 칭찬에 마음이 달뜨고 시누이와 시부모님의 따뜻한 정담에 그야말로폼(?)을 잡는일, 이런잔재미에 잔뜩 맛을 들여 살고있는 대부분의 우리 범부(범부)들에게 어느날 문득 그런일들이 모두 다 가치없는 일이라는 자각을 심어주는 일이다.
그것도 어느닐 지금까지의 자기살림을 다 팽개쳐버리고 외국으로 달려가서 어떤 전문분야의 제1인자로서의자격을 얻어와 군림하고 있는 소위 성공한 여성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못난 범부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심기를 꺾고 있는것이다
새삼스럽게 이제 우리들이 나서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것인가.
『당신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그저 이런 평범한 말을 들으며 조용히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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