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네모세상] 임실군 옥정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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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스름 안개를 헤치고 임실 땅 국사봉(475m)에 오르면 한 순간 끝없는 구름바다가 펼쳐진다. 선경과 속세가 고작 한 발짝 차이다. 한 뼘 앞도 가늠키 어려운 우리 삶이 이와 같은가. 동쪽 마이산에서 이 봉우리 저 봉우리 넘나들며 밀려드는 운해는 하늘이 그려내는 한 폭의 수묵화다. 해오름과 함께 하늘로 떠오르는 운해에 숨이 멎고,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옥정호에 넋을 잃는다. 섬진강댐을 막아 만든 호수에 떠있는 섬 '외안날'은 강물의 쉼터인 양 아늑하다. 예서 숨을 고른 섬진강은 순창.곡성.구례.하동을 거쳐 광양 바다로 내닫는다.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떠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이라고 읊은 김용택 시인의 시구처럼 섬진강은 그렇게 흐른다.

"아따 오늘 운해는 싱겁소. 여기 운해는 늦가을이 제일이지라. 아무래도 좀 더 밑으로 깔려야 산봉우리와 제대로 어울리는디. 10월 말께 다시 들러보소. 환장할 것이오." 안방 드나들 듯 옥정호를 촬영해 온 토박이 사진가의 한마디에 귀가 솔깃해진다.

촬영은 이른 새벽 시간을 택한다. 낮게 비치는 햇살이 운해의 질감을 잘 표현해준다. 30분 남짓 오르면 전망 탁 트인 네 곳이 나타나는데 그곳이 촬영 포인트다. 첫 번째는 외안날을 클로즈업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옥정호를 조망하기 적당하다. 세 번째는 발 아래로 밀려드는 운해를 담기 좋고, 네 번째 정상은 마이산까지 퍼진 넉넉한 운해를 담을 수 있다.

< HASSELBLAD X-pan 30mm f22 1/8 Iso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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