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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 건 블로그 중 "무섭다" 연관어 1위 엄마, 아빠는 1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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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너, 아버지한테 이른다”가 위협이 되던 시대는 갔다. 이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엄마다. 빅데이터 전문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에 의뢰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소셜미디어(블로그)에 올라온 7억여 건의 문서를 분석한 결과 ‘엄마(어머니)’가 ‘무섭다’는 말의 연관 단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아빠(아버지)’는 ‘친구’ ‘오빠’ ‘언니’ 등에 이어 1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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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아빠는 자녀에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친구 같은’ 존재다. 한의사 한봉재(45)씨는 “아홉 살 아들과 종이컵 쌓기 놀이, 네 잎 클로버 찾기 놀이 등을 하며 논다. 매주 주말농장에도 간다. 아이가 내 퇴근 시간만 기다릴 만큼 부자 사이가 좋다. 아내가 질투할 정도다”고 말했다. 은우(7)·시우(3) 남매를 키우고 있는 최용규(38·연구원)씨는 주말마다 아이들 목욕을 직접 시킨다. “목욕하면서 물감 놀이나 물풍선 놀이를 같이 해주니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빅데이터를 통해 본 아빠는 거의 만능처럼 보이기도 한다. ‘운전하고’ ‘출장 가고’ ‘돈 벌면서’, ‘자전거 타고’ ‘외식하는’, ‘멋지고’ ‘자상한’ 사람이다. 이들 단어는 ‘엄마’ 연관어 500위 안에 들지 않으면서 ‘아빠’에만 자주 연결돼 등장했다. ‘다정하다’ ‘그립다’ ‘친구 같다’ 등도 ‘엄마’ 목록엔 없는 ‘아빠’ 연관어다. 동시에 ‘무시하다’ ‘힘 빠지다’ ‘빼닮다’ 등도 아빠와만 집중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한편 ‘엄마’에게만 편중된 연관어는 ‘편하다’ ‘싸다’ ‘고민하다’ ‘고르다’ ‘수다 떨다’ ‘이해하다’ ‘늙다’ 등이었다.

최용규씨(38)가 일곱 살 딸 은우를 목욕시키면서 물감 놀이를 하고 있다(사진 위). 최씨 집에서 매 주말 펼쳐지는 풍경이다. [사진 아빠놀이학교]

 ‘엄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빠’ 쪽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로 ‘희망’과 ‘기대’ ‘비극’이 동시에 꼽힌 것도 이채롭다. 다음소프트 권미경 이사는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자상하고 친구 같으면서 희망이 되는 존재다. 물론 이혼·폭행·가난 등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언급 빈도가 높다. 하지만 점차 엄숙하고 고단한 ‘아버지’ 이미지보다 사랑스럽고 희망적인 ‘아빠’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교수 역시 아버지의 이미지를 ‘희망’으로 해석했다. 최근 대중문화계에 아버지 바람이 부는 이유에 대해 “희망과 의지가 되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사회적 갈망·그리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는 진정한 리더가 없다는 사회적 불만을 상쇄하기 위한 심리적 보상”이라고 짚었다.

김용범씨(50)가 2013년 11월 아홉 살 아들 현진이와 히말라야에 여행할 때의 모습. 김씨는 “여행을 가기 전 6개월 동안 현진이와 함께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사진 아빠놀이학교]

 ‘아버지(아빠)’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 점차 느는 추세다. 문서 10만 건당 ‘아버지’ 언급 횟수는 지난달 1593건에서 이달 1786건(28일까지 통계)으로 10% 이상 늘었다. ‘아버지’에 대한 호감도 역시 2012년 62%에서 2014년 69%로 증가세를 이어 가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긍정 감성 64%보다도 높은 수치다. ‘아버지’ 연관 인물의 얼굴도 점차 변하고 있다. 2008년 ‘아버지’ 연관 인물 1위는 ‘오바마’였다. 나폴레옹(4위)·세종대왕(10위) 등의 순위도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 조사에선 황정민·추성훈·이휘재 등 연예인들이 10위권 안에 대거 등장했다.

 아버지의 이미지 변화는 아버지 스스로의 중압감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 계명대 임운택(사회학)교수는 “아버지가 실수하는 모습, 우스꽝스러운 모습 등이 TV에서 긍정적으로 비치면서 가부장적인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 익숙한 아버지들에게는 자녀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아버지들의 등장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중앙대 신광영(사회학)교수는 “권위적인 아버지상에 익숙한 50∼60대들에게는 가정적이고 다정한 신세대 아버지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게 쉽지 않다. 사회는 바뀌고 있는데 자기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혼란스럽지만, 쉽사리 흉내 낼 수도 없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지영·김호정·한은화·신진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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