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범 추모가 "교회 가는 것과 같다"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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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 이어 일본 국회의원 195명이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이에 대해 "사적인 참배"라며 "기독교인이 교회에 가는 자유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해명했다. '전몰자 추모''오늘의 일본에 대한 감사''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참배 이유라고 덧붙였다.

먼저 물어보자. 야스쿠니 신사가 전몰자를 추모하는 단순한 종교시설인가. 그곳에 합사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전쟁터에서 희생된 전몰장병이 아니다.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A급 전범으로 1948년 교수형에 처한 인물이다. 많은 일본인조차 단순한 종교시설로 보지 않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올해는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이 53%나 나올 리 만무하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이웃나라의 반발을 줄곧 '내정(內政)간섭'이라고 우겼다. 야스쿠니 참배가 정치적 행위라고 자인해온 것이다. 실제로 일본 총리와 국회의원들의 참배는 종교 행위가 아니다. 군국주의를 미화하고 부활을 꾀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나 다름없다. 이를 교회의 기도와 비유한다면 전체 기독교를 욕보이는 일이다. 평화를 다짐하려고 그곳을 찾는다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아직도 침략과 전쟁의 생생한 피해 현장이 곳곳에 널려 있다. 독일 총리가 "전쟁은 없어야 한다"며 히틀러 흉상에 참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이 자주 과거 역사를 반성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연례 행사로 굳어지면서 그 진정성은 바래고 있다. 지금 주변국들은 일본의 '혼네'(本根=진심)와 '다테마에'(建前=겉치레)를 의심하고 있다. 입으로는 과거 역사를 반성한다면서도 속으로는 식민지 침략과 태평양전쟁을 오히려 긍정하고 찬양하는 게 아닌가. 말도 안 되는 마치무라 외상의 변명은 주변국을 또 한번 모욕하는 일이다. 이웃나라를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 정부는 진지하게 답변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