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내셔널 시큐리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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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시큐리티(National Security)'는 이상과 현실의 틈새에서 빚어지는 웃음에 전적으로 기댄 액션 코미디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따질 필요가 전혀 없다. 머리를 잠시 비우고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폭소를 즐기면 그만이다. 이른바 '킬링 타임'용으로 제격이다.

당연히 무기는 대조법이다. 출신.성격.피부색이 정반대인 두 명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공통점이라면 경찰을 평생 직업으로 희망한다는 것.

흑인 얼(마틴 로렌스)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욱하는 성질 탓에 경찰학교에서 쫓겨났고, 진지한 성품의 백인 경찰 행크(스티브 잔)는 얼과 관련된 사건으로 억울하게 경찰복을 벗어야만 했다.

철천지원수 같은 그들이 한 범죄 집단의 범행 현장에서 우연히 만나 옥신각신 다투다가 결국 둘도 없는 파트너로 활약한다는 줄거리다. 전형적인 버디 영화다.

평범하다.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영화는 기대 이상의 잔재미를 보여준다. '국가방위'를 뜻하는 제목의 '내셔널 시큐리티'는 사설 경비회사 이름.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이 회사에서 그들에게 지급된 물품 중 비상 사태 발생시 경찰에게 전화를 걸 동전 지갑이 단연 눈에 띈다. 이처럼 '누추한' 그들이 감히 국가 방위를 책임지겠다고? 돈키호테처럼 과대망상증에 빠진 그들의 모험담이 정신없이 전개된다.

흑백 차별 문제를 건드린 부분도 흥미롭다. 따발총처럼 내뱉는 얼의 대사는 주로 흑인에 대한 백인의 편견을 꼬집는다. 벌에 쏘여 곤욕을 치른 얼은 "흑인만 공격하게 길러진 못된 벌"이라고 말할 정도다.

전직 백인 경찰 행크는 체구가 만만찮은 흑인 여성에게 숱하게 빰을 맞는다. 물론 그건 다분히 오락적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 걸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일과 같다.

등장 인물도 정형화했다. 단순.과격한 성격에 쉴 새 없이 말을 내뱉는 마틴 로렌스는 에디 머피나 크리스 터커와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스티브 잔의 여자 친구를 흑인으로 설정한 것도 작위적이다.

두 주인공의 호흡은 볼만하다. 개와 고양이처럼 아옹다옹 싸우는 그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터진다.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밀수 집단이 등장하고, 경찰 내부에 부패한 세력이 있다는 설정도 식상하나 영화 전체를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무리없이 엮어가는 기본기를 갖춘 덕이다.

'빅 대디'로 흥행에 성공했던 데니스 듀건 감독이 연출했다. 16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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