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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무상복지가 불러온 연말정산 소동에 대한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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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지난 1월 15일,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 시작.

 1월 16일, 청와대·국세청 홈페이지 등 항의 글 게시 등 반발여론 확산.

 1월 17일, 정치권 여야 책임공방 격화.

 1월 19일, 최경환 부총리 연말정산 관련 보완대책 검토 시사.

 1월 20일, 최경환 부총리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내년 시행될 연말정산 관련해 공제항목 조정, 공제수준 조정 등을 감안한 세제개편안 적극 검토’ 방침 발표.

 1월 21일, 당정 긴급 협의회 개최 후 ‘연말정산 항목 중 일부 항목 세금 환급’ 방안 발표.

 최근 한 주간 연말정산을 둘러싸고 상황이 숨가쁘게 돌아갔다.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와 하는 이야기겠지만 혹자는 이번 사태를 두고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된다는 방침을 담은 2013년 세법개정안 논의 당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정안은 당시 국회에서 찬성 245표, 반대 6표로 통과되었다. 정부예산과 세제를 최종 의결하는 국회 상황도 이러니 그간 이 사태를 예견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재작년 세법개정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젊은 시절 함께 일하던 상사 A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돈은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 이번 혼란상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세금 걷는 것 자체보다는 복지지출 등 무리한 세출(歲出)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공공부문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4.53%에서 2012년에는 9.06%로 정확히 두 배 늘었다. 규모 면에서는 2012년 기준 공공부문 복지지출액이 124조8000억원이었으니, 28조 7000억원이었던 2000년보다 4.3배 늘었다. 최근 연말정산 반발여론을 보면 우리 국민들은 이런 지출을 부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아직 덜 된 듯하다. 필자에게 해법을 묻는다면 필자의 상사였던 A씨의 이야기를 빌려 답할 것이다. “세금을 많이 걷는 것보다 정부예산을 잘 쓰는 게 중요하다.”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대표적인 무상복지 유형으로 들곤 한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무상복지라는 어젠다를 선점하기 위해 각 당의 과열경쟁 양상까지 나타났던 기억도 난다. 그때마다 필자는 ‘무상’이란 단어가 적절한지 항상 의문이 들었다. 소위 ‘무상복지’라고 하면 소득계층 구분 없이 정부나 지자체의 재원으로 복지혜택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무상(無償)’은 어떠한 혜택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나 또는 내 가족이 복지의 수혜를 받았을 때는 아무 비용을 치르지 않는 듯이 보였지만, 이번 연말정산 사태에서 본 것처럼 국민 모두가 대가를 치르고 있었던 셈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우화(偶話)를 지금 상황에 맞게 곱씹어보자. 흔히 아는 이야기지만 중국 송나라 때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준다 하니 좋아했다는 우화다. 그런데 원숭이들이 영민해져서 저녁에도 네 개를 먹어야겠다고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상수리 개수를 여덟 개로 늘릴 수밖에 없다. 복지를 늘리면서 국민 부담이 늘지 않길 바라는 건 난센스다.

 예산이 한정돼 있다면 더더욱 ‘돈을 잘 쓰는 게’ 중요하다. 필자가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소득취약계층에서 차지하는 노인가구 비중이 2006년 34%에서 최근 2013년에는 56%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 가구의 소득 구조를 살펴보면 59%가량을 이전소득으로 충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에 소득의 3분의 2가량을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취약계층 지원은 다른 어떤 복지보다 우선돼야 한다.

 서울시 예산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분석 결과를 보자. 최근 3년간 서울시의 무상급식 예산은 2012년 1383억원에서 2014년에는 263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무상보육 예산은 누리과정을 기준으로 2067억원에서 5473억원으로 2.6배 증가했다. 이에 반해 서울시의 저소득층 지원 예산은 1696억원에서 1344억원으로 20% 정도 감소했다. 결국 우선순위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서울시의 경우 저소득층 지원을 줄이고 무상복지 지출을 늘려온 셈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복지지출의 우선순위는 다르다. 자립기반이 약한 취약계층 지원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본다. 그러고 나서 우리 경제가 보다 커지고 공공복지지출을 부담할 우리 국민들의 의지가 확인될 때 보편적 복지나 복지국가의 실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섣부른 무상복지의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