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대 기자의 '퇴근 후에'] 청량음료 같은, 야근 후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늘근 도둑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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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민석(왼쪽 사진, 더늘근 도둑 역)과 안세호(덜늘근 도둑 역). [사진 나인스토리 제공]

공연 내내 웃었다.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는'는 관객·배우의 거리가 가까운 소극장 특유의 장점을 십분 살렸다. 출연진 3명 중 중반까지 극을 이끄는 맹상열(더늘근 도둑 역)과 안세호(덜늘근 도둑 역)의 호흡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극 중간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는 안세호의 재치는 칭찬해줄만 했다.

사회풍자극이라는 말대로 '취준생, 4대강,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대사 속에 나오지만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되레 너무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스토리에 무게를 더해주는 듯 했다.

여기에 쉼없이 튀어나오는 배우들의 '애드리브'는 이 작품의 또다른 재미 요소다. 애드리브인 듯 애드리브 아닌 애드리브 같다고나 할까. 애드리브를 하려고 일부러 대본을 비워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만큼 극 짜임새가 촘촘했다는 의미다. 아주 웃기려고 작정한 듯 말이다.

그러나 그 애드리브들 때문에 '연극'이라기 보다는 일요일 저녁의 '개그콘○○'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극(正劇)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아쉬운 부분으로 남을만 했다. 또 극 중반에 쇼걸로 분장한 배우(그것도 남자)가 섹시춤을 추는 장면은 차라리 없는 게 나을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만한 건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연기 안되는 배우가 웃기려 하면 그만큼 안쓰러운 게 어디있겠는가. 다행히 극 끝날 때까지 안쓰러웠던 적은 없었다.

이 작품은 막이 내려진 후에도 뭔가 모를 여운이 남는 연극은 아니었다. 극장을 빠져나와서도 술에 취한 듯 가슴이 콩닥거리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공연만의 매력은 분명 있었다. 은은한 향이 풍기는 커피는 아니지만 입 안이 쏴해지는 청량 음료 같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전날 야근하는 바람에 피곤을 어깨에 짊어지고 간 공연이었는데 스트레스 풀기에 그만이었다.

※조한대의 '퇴근후에'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가볼만 한 공연을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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