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맨손 매운탕, 복불복 정식 … 경북 공무원이 꼽은 맛집 127곳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경북 문경시 점촌 ‘세구기매운탕’ 주인 김세국(51)씨는 ‘어신(漁神)’으로 통한다. 매운탕을 시키면 김씨가 주방 귀퉁이에 둔 어항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한 마리씩 건져 올린다. 뜰채는 사용하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는다기보다 그냥 줍듯이 달아나는 물고기를 척척 주워 담는다.

 놀라운 건 물고기를 다듬을 때도 칼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한다. 손가락으로 아가미를 뚝 떼어내고 내장을 꺼낸다. 마치 신들린 듯 물고기를 정리하고 깨끗한 물에 헹군 뒤 아내가 준비한 채소와 양념이 깔린 냄비 위에 던져 넣는다. 물고기는 문경 영강천 등지에서 직접 잡는다. 물고기를 잡을 때도 장비 하나 없이 맨손으로 잡는다.

 #6·25전쟁은 경북 포항시 오거리 ‘신라왕갈비’ 서말순(73) 사장의 부모를 한꺼번에 앗아갔다. 그의 나이 일곱 살 때다. 다행히도 전라도가 고향인 아주머니가 그를 수양딸로 품어줬다. 고사리 손으로 집안일을 도와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19세 때 독립해 경주역 앞에서 막걸리 배달과 판매를 시작했다. 스물두 살엔 혼인해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결혼 6년 만에 남편은 어린 4남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망연자실해 있던 그는 1972년 식당을 열고 불고기 찌개를 선보였는데 금세 입소문이 나면서 40년 넘게 이어졌다.

 세구기매운탕과 신라왕갈비는 경북도가 최근 발간한 『면서기가 추천하는 단골맛집』(사진)에 소개된 음식점 중 일부다. 이 책에는 음식점 127곳이 실렸다. 이들 맛집은 경북 23개 시·군의 행정 최일선인 331개 읍·면·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주민과 부대끼며 찾아낸 음식점들이다.

 300곳을 추천받아 다시 추렸다. 가급적 많이 알려진 모범음식점은 제외하고 면사무소 인근의 숨은 맛집을 최대한 새로 발굴했다. 지역과 음식 종류는 치우치지 않도록 했다. 맛집을 기획한 김일환 경북도 관광진흥과장은 “숨은 맛집을 찾아내 경북 구석구석으로 관광객을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시식과 취재는 박필우(55) 스토리텔링 작가가 맡았다. 지난해 여름부터 6개월여에 걸쳐 하루 6~7곳의 음식점을 들렀다고 한다. 박씨는 “사연이 남다르거나 음식이 정갈한 맛집에 우선 순위를 뒀다”고 말했다. 박씨는 본지의 요청으로 이중 32곳을 다시 추렸다.

 이 가운데는 조그만 면 소재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음식점과 계절과 날씨에 따라 주요리가 달라지는 복불복 정식집도 있었다. 김관용 경북지사가 자주 들르는 맛집도 있다. 20대 초반에 상경해 중국집 주방장이 된 뒤 고향으로 돌아온 경우도 흥미롭다. 아내가 뱃사공 남편에 속아 시집온 뒤 매운탕집을 하는 곳도 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부부가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 떠나는 추어탕집도 들어 있다.

송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