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주고 산 식당도 이름값은 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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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부산 동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34·여)씨는 최근 중구의 한 식당 주인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새옹지마’라는 상호를 간판으로 내건 게 문제였다. 소송을 낸 식당 주인은 “서비스표 등록을 한 식당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은 권리 침해”라며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한자성어로 된 상호가 법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법원에서 정확한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새옹지마’라는 한자성어 상호를 두고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서비스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자영업자들이 법원으로 불려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이렇다. 천모(52)씨는 2007년 12월 부산 중구에서 영업 중이던 ‘새옹지마’라는 식당을 정모(68·여)씨에게서 5500만원에 샀다. 가게 비품과 간판·상호도 그대로 넘겨받았다.

 하지만 식당을 판 정씨는 3년5개월 뒤인 2011년 3월 천씨의 가게 근처에서 동일한 이름의 식당을 개업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상호 앞에 ‘원조’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2013년 2월 한 영농법인으로부터 ‘새옹지마’라는 서비스표를 사들였다. 이 법인은 2006년 새옹지마를 특허청에 서비스표로 등록해 보유하고 있었다.

 소송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새옹지마라는 상호의 사용 권리를 확보한 정씨는 천씨를 상대로 “왜 남의 가게 이름을 마음대로 쓰느냐”며 부산지법에 서비스표 사용 중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상호사용 금지 소송을 냈다. 가처분 신청에서 법원은 “천씨가 식당의 간판과 집기 등 물적 설비와 종업원의 고용관계를 넘겨받았고 정씨가 수년 동안 상호 사용 중지를 구하거나 이의를 제기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천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가처분 신청과 달리 상호사용 금지 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서비스표를 가진 정씨의 권리가 인정된다”며 “새옹지마 상호를 사용해서 안 된다”고 천씨에게 패소 판결했다. 승소한 정씨는 패소한 사용중지 가처분 청구소송에 다시 이의신청을 냈고 법원은 다시 정씨의 권리를 인정했다. 결국 천씨는 새옹지마 간판을 내리고 다른 상호를 내걸면서 소송전은 일단 마무리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옹지마 간판 소송전이 다시 확대됐다. 소송에서 이긴 정씨가 부산 동구의 최씨에게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이 재판은 현재 부산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새옹지마 간판을 단 식당은 부산 외의 다른 지역에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씨는 “권리 찾기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전국 모든 식당을 대상으로 소송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상필 변리사는 “서비스표는 특허청에 먼저 등록한 사람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제도”라며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도 인정된다는 점을 모르는 영세상인들이 주로 소송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리사는 “가게를 내기 전에 특허청이나 법률 전문가를 통해 해당 상호의 권리를 체크한 뒤 사용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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