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술 자립 빗장을 여는 한 서울대 교수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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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대 ‘테뉴어(정년보장)’ 교수직을 벗어던지고 LG화학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진규(52) 서울대 화학부 교수의 도전이 신선하다. 연봉이 높은 전무급 자리라고는 하지만 명예와 안정을 포기하고 자신의 전공 분야인 무기 나노 소재 기술의 상용화라는 새로운 모험을 찾아나선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 서울대 테뉴어 교수 중 기업체로 옮긴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학 실험실에서 개발된 신소재 기술이 시장에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이 교수의 도전 이유다. 그가 교수로 재직하면서 출원한 특허만 97건이다. 특히 현재 삼성전자 TV패널에 탑재되는 기술인 ‘퀀텀닷(전류를 흘리면 다양한 빛을 내는 양자들을 주입한 반도체 결정)’의 상용화 기술을 개발했었다.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은 이를 토대로 ‘나노스퀘어’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 교수는 “당시 시장에서 퀀텀닷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었는데 기업이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연구개발 비용을 많이 지출하는 나라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세계 최고다. 그런데도 첨단기술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매년 기술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산학(産學)의 활발한 소통과 협력이 부족한 게 한 원인이다.

 더욱이 무기 나노 소재 분야는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실리콘 음극재나 탄소나노튜브 등 본격 상용화되지 않은 분야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신기술과 그로 인한 신산업의 발전에는 대학의 기술력과 기업의 응용 능력이 잘 융합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교수는 “하고 싶던 일인 만큼 업적을 낼 자신이 있다”고 장담한다. 그런 이 교수의 영입과 함께 LG화학의 무기 소재 연구 개발에 가속도가 붙으리라 기대된다. 반대로 기업 출신이 대학으로 옮겨 산업현장의 생생한 흐름을 전달하는 상황도 가능해야 한다. 이 교수의 도전이 대학과 기업의 교류를 촉진해 대한민국 기술 자립의 빗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