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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없는 달걀 요리 어때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햄프턴 크리크 푸즈의 CEO 조시 테트릭이 자사에서 개발한 식물 기반 마요네즈 ‘저스트 마요’에 들어가는 노란 완두콩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미국인 요리사 크리스 존스는 가난했던 견습생 시절 즐겨 먹던 음식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달걀 하나를 얹은 라면 한 그릇에 맥주 한 캔. 요리 서바이벌 프로 ‘톱 셰프(Top Chef)’에 경쟁자로 출연해 명성을 얻기 오래 전 이야기다.

현재 존스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신생 식품기업 햄프턴 크리크 푸즈(Hampton Creek Foods, 이하 햄프턴 크리크)의 요리 혁신부 책임자로 일한다. 라면과 맥주는 요즘도 그의 생활과 잘 어울리지만 달걀은 그렇지 않다. 존스와 약 70명의 동료 직원들은 미국인 식탁에서 달걀 없애기를 사명으로 삼고 있다.

달걀을 다른 식품으로 대체하는 것이 이 회사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다. 치아(멕시코가 원산지인 사루비아과 식물) 씨앗과 가르반조 콩, 또는 감자와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달걀 대체 식품은 이미 알려져 있다. 하지만 햄프턴 크리크는 이 분야에서 유독 주목을 받는다. 약 3년 전 설립된 이 회사는 마요네즈나 쿠키 같은 인기 식품 제조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방법을 모색해 왔다. 젤을 형성해 재료를 서로 엉기게 하고 걸쭉하게 만드는 달걀 고유의 특성이 요구되는 식품들이다.

햄프턴 크리크는 이들 식품에 달걀 대신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이용한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 조시 벌크와 조시 테트릭은 세계 각지에서 나는 식물 4000여 종의 단백질을 추출·분석하는 광범위한 실험 끝에 식물을 기반으로 한 달걀 대체 물질을 찾아냈다. 이들은 캐나다산 노란 완두콩 등 달걀의 유화(乳化·emulsifying) 특성을 흉내 낼 수 있는 10여 종의 식물을 발견했다. 이 식물들을 달걀 대신 이용하면 닭의 배설물, 먼지, 암모니아 등 공장형 양계 산업(caged-chicken industry)으로 발생하는 환경 파괴 물질이나 방목형 양계 산업(free-range chicken business)에 요구되는 높은 비용을 피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 투자자들이 햄프턴 크리크에 지금까지 3000만 달러(약 300억원)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또 최근 세일즈포스(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CEO 마크 베니오프,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에두와도 새버린 등으로부터 9000만 달러의 벤처 자본을 추가로 투자 받았다고 발표했다. ‘저스트 마요(Just Mayo)’ ‘저스트 쿠키(Just Cookies)’ ‘저스트 쿠키 도우(Just Cookie Dough)’ 등 햄프턴 크리크의 제품들은 현재 호울푸즈와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에서 판매된다.

“햄프턴 크리크에서 하는 모든 일은 근본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 몸과 지구에 매우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테트릭이 말했다. 앨러배마주 출신인 그는 케냐에서 유엔 개발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을 포함해 아프리카에서 7년 동안 일한 경험이 있다. “우리 몸과 지구에 더 좋은 음식이 맛도 더 좋고 가격도 더 저렴하다면 어떨까?”

햄프턴 크리크 철학의 중심에는 세계 달걀 생산이 남기는 환경 발자국(양계에 필요한 땅과 물, 화석연료 등)이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unsustainable)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1칼로리의 달걀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가 약 39칼로리에 이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07년 세계 달걀 생산량은 5900만 톤이었으며 2030년까지 그 양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대규모 양계 산업은 심각한 환경 오염을 초래한다. 닭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과도한 질소와 인이 강을 오염시키고 계사의 환기 시설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암모니아는 토양을 오염시킨다.

햄프턴 크리크 푸즈는 세계 각지에서 나는 식물 4000여 종의 단백질을 추출·분석하는 광범위한 실험 끝에 식물을 기반으로 한 달걀 대체 물질을 찾아냈다.

지구의 건강에 달걀이 나쁜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하다. 반면 인체 건강과 관련해서는 달걀 섭취와 심장병의 연관성을 놓고 이견이 일고 있다. 하지만 달걀 노른자는 콜레스테롤이 많고 경동맥 플라크를 유발할 수 있다. 이미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거나 다른 심장 건강 위험 인자를 지닌 사람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햄프턴 크리크의 제품들은 콜레스테롤이 없으며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에게 안전하다. 하지만 테트릭이 정말로 추구하는 것은 식품 생산 전체의 혁신이다. 만약 햄프턴 크리크가 달걀을 생산 과정에 땅이나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식물의 단백질로 대체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또 그 식물이 비교적 저렴하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재배할 수 있는 종류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급증하는 세계 인구를 더 잘 먹여 살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숙련된 유명 요리사들이 이런 노력을 선도하고 있다. 2012년 레스토랑 업계를 떠나 햄프턴 크리크에 합류한 존스 외에 페이스트리 전문 요리사 벤 로슈와 트레버 니코왈이 이 회사의 연구개발 요리사로 동참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시카고의 유명 레스토랑 모토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퓨처 푸드(Future Food)’에 단골로 등장하던 레스토랑이다(로슈는 모토의 소유주 호마로 칸투와 함께 이 프로그램의 공동진행자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 30대 초반인 이 세 요리사의 레스토랑 경력을 모두 합하면 50년이 넘는다. 레스토랑의 토요일 저녁 근무가 이들 삶의 중심이었던 때가 있었다. 직접 개발한 요리법으로 정성껏 만든 음식이 시장한 고객의 접시 위에서 최종 시험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요즘 이들은 여느 회사원처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며 신제품 ‘저스트 스크램블(Just Scramble)’ 개발에 매달린다. 식물성 단백질로만 만든 액체 상태의 스크램블드 에그 제품으로 올해 출시한다.

이들에게 최고 발견의 순간은 희비가 교차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의 아침 식탁에서 달걀 프라이를 끌어내리려는 목표에 한걸음 다가설 때마다 즐거웠던 아침 식사에서 그만큼 멀어져 간다는 생각에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게 이들의 현실이다.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할 때는 일의 성과를 즉각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존스는 말했다. “손님들이 내 서비스에 만족하는지 아닌지를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는 몇 개월 앞을 내다보고 일한다. 승리의 기쁨도 그만큼의 시간 차를 두고 찾아온다.”

‘저스트 스크램블’ 현재 버전의 조리 전 상태는 달걀을 깨서 포크로 휘저어 놓은 듯한 모양새다. 로슈에 따르면 큰 성공이다. 이전 단계에선 제품이 팬케이크 반죽처럼 끈적끈적했지만 지금은 더 묽어졌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부으면 달걀처럼 거의 즉시 익는다고 그가 말했다. “확실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달걀과 더 흡사하게 요리된다. 보기에도 그렇고 식감도 달걀과 매우 비슷하다.”

햄프턴 크리크의 차고처럼 생긴 널찍한 주방 겸 실험실 겸 사무실에서 실험이 진행된다. 존스와 그의 동료 요리사들이 레인지 위에 놓인 팬 주변에 모여 있다. 그 옆에는 생명공학자와 식품과학자, 데이터 분석가들이 앉아 있다. “우리는 이 과학자들에게 직관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고 존스는 말했다. “우리는 자주 ‘무엇이 (요리에) 효과적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왜 효과적인가?’가 아니라 말이다.”

생명공학자들과 데이터 과학자들은 식물을 분석하느라 바쁘다. 세상에 알려진 40만여 종 식물의 식품 적용 가능성과 관련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면 단백질 성분을 분석해 어떤 성분이 응고나 유화에 더 적합한 특성을 지녔는지를 판단한다. 반면 햄프턴 크리크의 요리사들은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식품들이 실용적이고 맛이 좋은지를 판단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 회사가 주부들이 주방 수납장에 넣어놓을 만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를 판단할 책임이 있다.

“사람들이 이 혁신적인 식품 회사가 과학 식품을 만들거나 시험관에서 이상한 것들을 재배한다고 생각하는 건 싫다”고 로슈는 말했다. “우리는 진짜 식품을 만든다.”

하지만 햄프턴 크리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 헬만 마요네즈를 생산하는 연 매출 600억 달러의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는 햄프턴 크리크를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유니레버는 햄프턴 크리크가 ‘저스트 마요’(상표에 식물 줄기에서 달걀이 자라나는 그림이 들어 있다)를 마요네즈로 허위 광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니레버는 결국 소송을 취하했다. “따라서 햄프턴 크리크는 그 상표 문제를 식품업계의 단체들 그리고 해당 규제 당국과 직접 논의하면 된다.” 유니레버 북미 지사의 식품 담당 부사장 마이크 패허티가 한 성명에서 말했다.

달걀을 다른 식품으로 대체하려는 햄프턴 크리크의 노력은 이 회사를 매우 강력한 업계와 맞서 싸우도록 만들었다. 업계에서 이미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일례로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버즈피드는 2013년 말 미국달걀협회(AEB, 달걀 생산업자들로 구성된 대규모 달걀 마케팅 조직)가 달걀 대체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광고를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구글에서 햄프턴 크리크의 제품을 검색할 때마다 화면에 뜨도록 만든 광고다.

하지만 햄프턴 크리크는 혹시 있을지 모를 법정 공방보다 곧 닥칠 프라이팬 시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비자는 각기 다른 기름과 열, 팬과 스토브를 이용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달걀을 요리한다”고 니코왈은 말했다. “50명의 시험단이 우리 달걀 대체 제품을 완벽하게 요리할 수 있다면 그제서야 진정한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험이다. 식물 단백질로 만든 달걀이 젤 상태가 된다 해도 그 속에 수분이 없다면 팬 속의 뜨거운 기름에 닿는 순간 증발해 버릴 것이다. 식물 단백질과 적절하게 반응해 달걀의 유화 특성을 흉내 낼 수 있는 보완 식품(존스와 로슈, 니코왈은 이 식품에 관해 말을 아끼고 있다)을 찾아내는 데 6개월이 걸렸다. 니코왈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레스토랑 ‘르 피종’(제임스 비어드상을 두 번 받았다)을 떠나 햄프턴 크리크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식물로 달걀을 만들라는 말에 매우 놀랐다고 회상했다.

“여기서는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이 2주일 동안 계속 될 수도 있다. 실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하는 수 없지 않나”라고 니코왈이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하루 저녁에 손님 100명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지 않아도 된다. 하룻밤에 1인당 200달러 이상을 지불하는 손님 120명을 감동시키는 대신 매일 수백만 명을 위해 일할 수 있다.”

글=앤드류 자레스키 뉴스위크 기자,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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