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업 이으라는 부모 몰래 음악 공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나는 1924년 만주의 심양에서 5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부모님은 조그만 정미소를 하고 계셨는데 식구 모두가 기독교신자였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때부터 찬송가에 친밀감을 가졌는데 그것이 일생을 성악에 몸바치게 된 간접적 동기가 되었다.
집안식구중 12살위인 큰형이 바이얼린을 연주했는데 나는 큰형을 무척 따르는 편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때 학예회무대에 처음 서보기도 했는데 중학교때 수학에 취미가 없어 벌대신 노래를 부르곤했다.
당시 수학선생님으로부터 노래를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 더욱 노래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형님들이 중국대륙으로 뿔뿔이 흩어지자 부모님은 막내인 내가 정미소일을 맡아 집안살림을 꾸려가기를 바랐기때문에『사내가 무슨음악따위를 하느냐』며 음악을 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그렇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고 디스크를 사모으고 전당포에서 헌아코디언을 구해 부모몰래 악보공부를 계속했다.
44년 2차대전말기에 일군에 징병을 당해 시고꾸에서 훈련을 받던중 일본이 패망, 부산을거쳐 서울로 돌아왔으나 삼팔선이 가로막혀 만주행이 어렵자 낙심하던 차에 현재명선생의 고려교향악단합창단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공부를 계속하다 46년 경성음악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졸업후 선린상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6.25동란이 일어나 해군정훈음악대에서 근무했다.
그뒤 경남여중·서울예고를 거쳐 한양대에서만 20년을 근무하고 있다.
48년 한국최초의 오페라공연인「춘희」에 단역으로 출발한 이래 지금까지 40곡작품에 1천8백회의 공연을 가졌다.
나는 처음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래 지금까지 후회하거나 회의를 품은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소리가 나지않을때까지 음악을 계속할 작정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내와 끈기가 부족하다고들 말하는데 자신이 결심한일에 한눈 팔지 않고 몰두하는 집념을 가진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꼭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