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여성 대통령 드라마에 열광하는 미국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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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남정호 특파원

요즘 미국에서 뜨는 TV 드라마가 있다.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한 ABC의 '총사령관(Commander in Chief)'이 그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대권 도전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드라마 이상의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대통령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여성 부통령이 졸지에 대권을 잡게 되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쓰러진 대통령은 극우파이자 남성인 하원의장을 후계자로 삼기 원했다. 그래서 숨지기 직전에 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한때 망설이던 부통령은 분개한 나머지 도리어 대통령에 즉각 취임한다. 그러곤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간다. 세 아이의 어머니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을 호령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언뜻 비현실적으로 비칠 법한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은 열띤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첫회 시청자는 1640만 명. ABC 프로그램 중 스포츠 중계를 제외하면 2003년 이래 가장 높은 시청률이다. 언론도 호의적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시즌 최고의 새 드라마"라고 극찬했다.

뉴욕 타임스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고 평했다. 게다가 지난달 백악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중 79%가 "여성 대통령이 편하게 느껴질 것 같다"고 답변했다.

현실 정치에선 여성 거물들의 대권 도전이 기정사실로 되는 느낌이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 후보인 힐러리 의원은 내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이기면 곧바로 대권 도전을 선언할 기세다. 라이스는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더 열성이다. '콘디(콘돌리자의 애칭) 후원회'가 결성되고 그 회원들은 2008년 대선에 라이스를 공화당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심지어 '총사령관'의 중간 광고시간에 라이스 지지 광고를 내는 극성을 떨었다. ABC가 최근 방영한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은 무료한 생활에 지친 가정주부의 위기를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총사령관'은 여성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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