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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하는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해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온동네를 진동할 땐 어김없이 모내기가 한참이다.
집집마다 일손이 모자라 쩔쩔매면서도 모내기 하는 날 만큼은 온동네 사람들이 오순도순 일손용 도우며 품앗이가 시작된다.
해마다 다섯 번째가 우리집 모내기 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산나물 뜯으시느라 분주히 다니셨던 할머님께서는 감기 몸살로 누우셨고, 밤새껏 도라지·더덕 껍질을 벗기느라 하얀 방을 지새우시던 어머님은「모내기하는 날은 푸짐히 음식을 준비하고 싶은 건 왜일까』하시며 웃으셨다.
푸짐히 음식준비 하라시며 아버님은 새벽부터 논으로 나가셨고, 찰떡을 치는 동네 청년들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시골집을 정정 올린다.
커다란 항아리에 막걸리랑 모과주를 가득 채워 놓고 음식 만들 재료들을 대충 정리할 즈음 이웃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꽃게 잘라 양념하고, 더덕을 초장에 굽고, 돼지고기 살코기 발라 숯불에 구워내는 푸짐한 요리시간이다.
요리솜씨가 처지는 나는 김재는 일로 하루가 꽉 짜여진듯 눈 높이 만큼 김이 쌓여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오이·풋고추 상치를 한 바구니 뜯어다가 각종 무침을 만들며 온동네가 잔칫집처럼 분주하다.
이웃 할아버지의 노랫가락이 구성지게 들판을 타고, 새참을 열심히 나르는 여삿살짜리 훈이 녀석의 고사리손도 까맣게 그 올려 있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남녀노소가 빙 둘러앉아 웃음으로 화제를 모으며 맛있게 점심을 먹는 즐거움은 농촌사람이 아니고는 참맛을 알 수가 없다.
막걸리잔 오가는, 정겨움 넘치는 시골생활이 싫지만은 않은 것을 보면 어느새 나는 시골 아낙이 되어가나 보다.
며칠째 크림 한번 발라보지 못한 거친 손이지만 작은 잔칫날이 있는 시골생활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이운숙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아랫대화5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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