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외국 펀드 추징 옳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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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엔 왜 발표합니까."(출입기자)

"국민의 관심이 높은 사안이어서…. 개별 기업 조사 내용은 알아서 판단하세요."(국세청)

국세청은 지난달 29일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5개 펀드에 대해 2148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펀드별 추징액은 공개하지 않는 대신 탈루 유형만 내놓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국세청은 이날 기자들의 요청이 잇따르자 탈루 유형을 도표를 곁들여 상세히 공개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황상 론스타 펀드 등이 당사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국세청이 행여 언론의 정보 공개 요청을 펀드별 탈법 사례를 낱낱이 공개하는 데 이용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예상대로 외국계 펀드의 편법 운영 실태가 공개되자 '외국 투기 자본의 먹튀 관행은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해당 펀드들은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합법적인 투자는 최대한 보호하되 국세청의 발표대로 내.외국 자본에 대해 차별 없이 엄정하게 과세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부당한 변칙거래로 (금융) 관련 법을 어겼다면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만약 조사.발표 배경에 막대한 투자 차익을 남긴 외국인 투자자를 손봐야 한다는 식의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감안됐다면 이는 경계해야 한다고 금융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외국계 컨설턴트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이 좋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여론몰이식의 '탈법 때리기'가 반(反) 외국 자본 정서로 번져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키는 우를 범해선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아직도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외국인 투자가 절실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외 개방과 외자 유치에 대해선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공연히 외국 자본의 오해를 살 만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병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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