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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회노동당 집권후에 급변하는 스페인|「개방-청교도전통」마찰 심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나는 창녀가 되고싶어요. 나를 돈주고 사주는 돈많은 신사가 나는 좋아요….』
최근 스페인에선 무명의 여성보컬그룹 라스불페스가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불러 갑자기 유명해졌다. 「마멘」 「루페」 「롤라」 「베고나」라고 부르는 4명의 아가씨의 이 노래가 라디오방송의 전파를 타고 나가자 보수계 신문들이 「스페인의 타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높이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계 신문들의 표적은 스페인 서어로 「창녀」란 뜻을 갖고 있는 보컬그룹 라스불페스라기보다는 얼마전 집권 1백일을 맞은 사회노동당 정부다.
40여년동안의 「프랑코」 독재기간중 잘 다듬어져왔던 스페인의 청교도적 전통과 관습이 「펠리페·곤살레스」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뒤 하나하나 허물을 벗고 있다는 얘기다. 「프랑코」총통사후 엄격한 청교도적 관습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스페인사회는 사실 사회주의 정부가 등장한뒤 급격한 변모를 보이고 있다.
거리의 신문판매대엔 포르노잡지가 즐비하고 포르노영화상영 전문영화관이 당국의 허가로 문을 열었다.
「프랑코」시대 지하에 숨어 살아야했던 동성연애자들은 더이상 자신을 감추지 않아도 좋고 합법적인 단체까지 조직, 권리주장의 시위마저 벌일만큼 됐다.
그동안 엄격히 규제돼왔던 마약도 이제 암거래만 법의 제재를 받을뿐 사용은 각자의 자유에 속한다. 어떤 구역에선 대마초유 정도는 자유롭게 사고 팔수 있다.
마드리드 젊은이의 12%이상이 매일 마약을 사용한다는 보고도 있다.
비교적 점잖은 신문으로 알려진 엘 페이의 광고난도 세태의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마사지 살롱의 선정적인 광고문안과 함께 호텔이나 가정에 특별서비스 출장을 전담하는 젊은 남녀의 소개 등이 지면을 메우고 있다.
아직 수영장에서 톱레스 수영복을 대하긴 어렵지만 거의 비슷한 차림의 여성들이 점차 늘고 있고 「프랑코」시대엔 상상도 못했던 젊은이들의 혼전교섭도 이제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다.
마드리드의 14세부터 24세까지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혼전교섭에 찬성하고 있다.
금지돼왔던 성전환수술도 허용되고 여성들의 인공유산도 인정되고 있다.
청소넌들의 매음행위도 도시의 독버섯처럼 돋아나고 있다.
「창녀의 노래」에 대한 비난은 그동안 이같은 사회변모에 대해 못마땅히 여겨온 보수계 인사들의 불만을 폭발시킨 도화선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마드리드의 보수계 신문 ABC는 이 노래의 가사를 모두 소개하고 『가정을 모독하고, 뜻있는 시민들을 분개시키고 있는 이 노래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 신문은 또 사회노동당정부가 들어선뒤 스페인사회를 비기독교화하고 청소년을 타락시키기 위한 각종 캠페인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고까지 사설로 꼬집었다.
「창녀의 노래」를 부른 라스 불페스 멤버들조차 별것도 아닌 노래를 가지고 야단들이라고 어리둥절할만큼 이 노래의 파문은 더 계속된다.
보수계 정치인들은 이 노래를 방송으로 내보낸 방송국장의 사임을 요구했으며, 보수정당인 민족주의당의 한 의원은 『사회노동당이 서구문명을 파괴하려 하고있다. 윤리적 가치의 몰락, 청소년의 타락을 유도하고 있다』고 규탄하기까지 했다.
야당에선 특히 젊은이들이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성전환수술을 받지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라스 불페스의 노래가 이토록 지탄의 대상이 되고있는데서 볼수 있듯이 사회주의 정부의 사회개혁정책은 스페인의 뿌리깊은 청교도적 전통의 반격을 받고 있다.
말할것 없이 교회세력의 반발이 심하다.
사회노동당 정부에 의해 인공유산이 합법화하자 교회는 무고한 수천생명의 조직적 학살이라고 비난하고 정부를 합법적 살인자로 낙인찍었다.
어떤 가톨릭계 중학교에서는 여교사가 미혼모라는 이유로 파면했고 자녀의 성교육에 반대하는 일부 부모들은 성교육담당교사를 고소하기도 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약국에선 피임약을 찾는 고객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오늘의 스페인은 결국 「프랑코」시대의 폐쇄적·종교적 전통사회와 사회주의 정부의 개방정책이 어쩔수없이 마찰하고 있는 싯점이라고 말해야할것 같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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