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상 줄이면 일반고는 어떡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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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달 3일 교내 대회별 수상 인원을 참가 인원의 20% 이내로 제한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중·고등학교 교내상 지침’을 전국 시도교육청에 통보했다. 이를 두고 “입시 현실을 무시한 방침”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특히 일반고의 불만이 높다.

백화점식 교내상 만들어지는 이유

자기주도학습상·리더십모범상·미소인사상·스터디플래너상 …. 수시전형을 통해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한 수험생 김모양이 받은 교내상의 이름이다. 이외에도 영어경시대회, 시사토론대회 등에 참여해 받은 교내상이 총 33개나 된다. 그는 “수업 시간에 모둠활동을 할 때 조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했기 때문에 리더십모범상을 받았고, 경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상을 받았다. 그런데 자기주도학습상은 어떻게 받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왜 상을 받는지 모른 채 상을 받는 학생이 나올 정도로 고등학교가 교내상을 남발하고 입상자를 늘리는 이유는 하나다. 대학 입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종로학원 김명찬 평가연구소장은 “2016학년도 기준으로 대학의 전형을 보면, 전체 대학 정원의 56.9%를 학생부 중심의 전형으로 선발한다”고 밝혔다. 수능 점수보다 학생부를 평가해 선발하는 인원이 더 많다는 얘기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은 학생부를 주로 평가하는 수시전형의 선발 인원이 60~70%에 이르는 등 상위권 대학 지원자일수록 학생부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는 내용은 교내 활동에 한한다. 교과 성적을 제외하면, 봉사활동·동아리·임원활동·교내상 수상 실적 등이 주요 내용이다. 김양은 “학생부도 중요하지만, 교과 공부만 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봉사활동이나 동아리, 임원 활동보다는 교내 대회에 참가해 수상 경력을 채우는 편을 선호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교내상 수상 실적이 많다고 대학 입시에 꼭 유리한 건 아니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지원하는 학과와 장래 희망에 연관이 있는 수상 경력이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일반고에서는 이 대목에서 불만을 제기한다. 백영고 오상길 교감은 “외고나 국제고, 과학고처럼 특정 분야에 소질이 있는 학생이 모인 특목고라면 교내 대회도 특화된 몇 개 대회만 만들어 질 관리를 할 수 있지만, 전교생의 성향이 다 다른 일반고에서는 백화점식으로 온갖 대회를 만들어 수상 실적을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랍어과를 지망하는 학생부터 지구과학과에 응시하는 학생까지 학생부에 ‘학과와 관련있는 수상 경력’을 만들어주려면 일반고에선 1년 내내 교내 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학부모들 불만도 크다. 서울의 한 일반고 최모 교사는 “자녀의 진학에 유리한 교내 대회를 만들어달라는 학부모의 항의 전화가 거의 매일같이 걸려온다”며 “교과 과정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대회를 만들어 달라면서 ‘일반고가 특목고나 자사고에 비해 학생 관리를 안 해준다’고 따지는 일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교사 입장에서는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 교사는 학생부 채워주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오 교감은 “학생부가 입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교사의 본질인 수업이 뒷전으로 물러나고 각종 교내 대회 관련 업무만 느는 등 학교 교육의 본질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능 수석조차 낙방한 학생부전형

교육부가 제시한 ‘교내상 지침’에 따르면 앞으로 학교에서는 대회에 참여한 학생의 20%(100명 미만이 참여한 대회는 30%)에게만 상을 줄 수 있다. 또 학기 초에 ‘학교 교육 연간 계획’을 수립할 때 그 해 개최할 교내 대회의 종류와 목적, 수상 내용·인원, 시행일 등을 반드시 기재하도록 했다. 학기 중간에 학생에게 필요한 대회를 급조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최 교사는 “수상 인원 제한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대회마다 학생들에게 ‘무조건 참가 신청만 하라’고 독려하면 상을 주는 인원은 얼마든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수상 인원을 제한하면 대회 종류가 더 늘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오 교감은 “현재 하고 있는 교내 대회를 학년별, 계열별, 분야별로 세분화해 개수를 늘리다보면 학사 일정에 더 큰 부담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일례로 지금까지 전교생을 대상으로 백일장 대회를 했다면, 앞으로는 ‘시(詩) 창작 대회’ ‘시조 대회’ ‘편지 쓰기 대회’로 쪼개고, 이를 다시 학년별로 치르면 상 받는 학생 수는 줄지 않지만 잦은 대회를 치르느라 교사 업무가 가중돼 수업의 질은 떨어지게 된단 얘기다.

학생부로 평가하는 대입 전형 자체에 대한 불만도 많다. 오 교감은 “올해 수능 만점에 표준점수로 인문계 전국 수석을 차지한 백영고 여학생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수시전형에서 1차평가 2~3배수 선발에도 들지 못해 줄줄이 낙방을 했다”며 “성적이 우수할 뿐 아니라 학교 생활도 모범적인 학생인데 도대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기에 1차에서 탈락했는지 이해가 안됐다”고 토로했다.

경기도의 일반고 권모 수석교사는 “고등학교 교내상 문제는 대학 입시 기준이 아리송하다는 방증”이라며 “대학의 입시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고 고등학교의 교내상만 단속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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