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인터넷 망 모두의 것" 공화당 "사유재산권 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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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에서 경제사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인터넷 망에 급행 차선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망중립성)를 놓고서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CEPR) 공동 소장인 딘 베이커는 최근 홈페이지 글을 통해 “망중립성 논쟁은 미국인들이 철도와 전신전화 규제를 놓고 미국이 찬반 양쪽으로 갈려 싸웠던 19세기 말 이후 가장 치열한 대결”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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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기야 14일(현지시간)엔 미국 공화당마저 뛰어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화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한 망중립성 정책에 대항에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이날 전했다. 미치 맥코넬 상원 새 원내총무와 존 선 상원 상업위원장은 “망중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공화당의 움직임은 오바마의 ‘망중립성 선언’에 대한 대응이다.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 망에서 차별 받지 않고 컨텐트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중립성 원칙에 맞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오바마 선언은 FCC에 대한 공개적인 주문이었다. FCC가 인터넷을 전화나 전기와 동급으로 분류해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버라이즌 등 인터넷망 사업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공화당을 향해 SOS를 외쳤다. 버라이즌과 컴캐스트, AT&T뿐 아니라 전미케이블텔레비전협회(NCTA) 등이 지난해 뿌린 로비자금은 약 4000만 달러(약 440억 달러)에 이른다. 미 정치자금 감시단체인 책임정치센터(CRP)는 “통신회사들이 지난해 가장 치열하게 로비한 주제가 바로 망중립성”이라고 밝혔다. 마침 공화당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공화당이 망중립성 논란을 연방정부 부채한도 논쟁을 대신해 오바마 행정부를 압박할 카드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재정절벽 논란에 버금가는 소용돌이가 일수도 있다는 얘기다.

 망중립성 논쟁의 최대 분수령이 다가오고 있다. FCC 위원들은 다음달 26일쯤 새 인터넷망 규정을 두고 표결을 한다. 지난해 1월 연방항소법원이 망중립성이 위법이란 취지로 판견한 데 따른 규정개정이다. 최대 관심은 FCC가 인터넷을 어떤 범주로 분류할 것인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FCC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인터넷망을 ‘범주(타이틀)2’로 분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유선전화와 동급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FCC의 강력한 규제를 받는 쪽이다. 이렇게 되면 FCC가 망중립성 쪽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올 2월 정해질 규정은 적어도 10년 동안 미국뿐 아니라 세계 표준이 될 전망이다.

 그렇다 보니 양쪽의 논리 싸움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심지어 경제논쟁을 뛰어넘어 시민권과 사유재산권 논쟁으로 비화했다. 망중립성을 옹호하는 미국 시민단체들은 망중립성을 ‘언론자유와 같은 급의 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다. 민권자유연맹(CLU)은 “FCC가 중립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인터넷망 사업자들이 돈이 되지 않은 지역에 투자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인터넷 소외를 심화시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인터넷 망사업자들은 “인터넷망을 규제하는 일은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으면 적절한 투자와 기술적 혁신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CEPR 베이커 소장은 “FCC 결정이 어느 쪽이든 불복사태가 뻔하다”며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이 뒤따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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