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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보는 중국, 이젠 양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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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신년사에 등장했으니 올 한 해 중국에선 이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을 것 같다. ‘신상태(新常態·New Normal)’란 용어 얘기다. 중국이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는 뜻이다. 두 자릿수 성장률, 혹 낮은 경우에도 7.7%(2013년)를 기록하던 고도성장이 막을 내리고 이제부터 안정성장의 시대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은 법, 고성장에서 벗어나 중(中)성장 기조 속에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을 해야 하니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부패와의 전쟁도 그 일환이다.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악성종양이 심장부에까지 퍼지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면 당(黨)도 나라도 설 땅이 없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전임자도 가만있었던 게 아니다. 요즘은 고속전철 객차의 이름을 빼곤 찾아보기 어렵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엔 ‘허셰(和諧)’란 구호가 넘쳤다. 모든 인민, 모든 계층이 어울려 함께 잘사는 조화사회가 목표였다. 그러자니 빈부 격차 줄이기와 성장에 대한 숨고르기가 필요했고 거품을 빼기 위한 긴축정책으로 이어졌다. 기득권 집단은 저항했다. 농토든 뭐든 깡그리 갈아엎고 개발사업을 벌이면 성장률이 높아져 업적으로 남고, 덤으로 ‘일용할 양식’이나 떡고물을 챙기며 호시절을 누리던 세력이 그랬다. 상하이 당 서기 천량위(陳良宇)가 후 주석의 노선에 반기를 들자 후 주석은 은밀하게 부패 혐의를 조사한 뒤 전광석화처럼 잡아들였다. 상하이방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집단에 대한 ‘꼼짝 마’ 선언이었다. 하지만 후 주석이 천량위를 잡은 건 이미 집권 4년이 지나서였다. 2년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고 임기 말로 가면서 후 주석의 개혁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세계경제가 허우적거리던 상황에서 중국은 4조 위안을 쏟아부으며 성장지상주의로 회귀했다.

 전임자와 달리 집권 초부터 반부패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시 주석이 성공을 거두려면 또 다른 차별화가 필요하다. 외과수술식 사정(司正)에만 의존하지 말고 부패의 토양을 없애는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3월부터 전국적으로 부동산 등기 조례를 시행하는 건 의미심장하다. 이게 전제되어야만 공직자 재산 등록이나 공개가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중국 사회를 ‘패(貝)’와 ‘양(羊)’의 코드로 풀이한다. 원시사회에서 화폐 역할을 하던 조개(貝)는 돈을 뜻한다. 예부터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쓰이던 양은 숭고한 이상과 가치를 의미한다. 의(義)·선(善)·미(美)에는 모두 양(羊)이 들어 있다. 따지고 보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오직 한길, 돈(貝)을 중시해 왔다. ‘앞을 보자(向前看)’는 구호가 현장으로 내려가면, 앞(前) 대신 같은 발음의 돈(錢)으로 바뀌고 말았다. 돈만 보고 달려 온(向錢看) 중국, 신상태는 이걸 바로잡기 위한 개혁과 조정의 과정이길 바란다. 양의 해, 이제 중국은 의·선·미를 찾아 달려야 한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