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종각 건립위해 천안시 옛 청사 철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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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천안 시민의 종’ 을 위한 종각 부지로 결정된 문화동 옛 시청사 내 조립식 별관이 헐리고 있다.

22일 천안시 문화동 구 시청사 부근은 시민들 왕래가 줄은데다 청사 철거 작업이 벌어져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이틀 전부터 '천안 시민의 종(鐘)' 종각 건립을 위해 별관(조립식) 및 시 금고(농협)건물 해체 공사가 시작됐다. 시청을 불당동으로 옮긴지 일주일만이다.

이를 보는 주민 심정은 착잡하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의 이모(61)씨는 "상권은 죽어가는데 시청을 옮기자마다 뭐가 급한지 종각부터 세운다"며 혀를 찼다.

그는 "구 청사 일대에 문화산업클러스터 조성이 추진되는 가운데 덜컥 종부터 설치하면 어쩌겠다는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종각이 향후 구 청사 활용 계획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내년 시장선거를 염두에 두고 연말 대대적인 제야 타종 행사를 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시는 올해 초 인구 50만명이 되자 종 건립 사업을 추진했다. '중부권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시민 화합의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시민성금 모금을 검토했으나 전 국민이 공감할 국가적 기념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기부금모집규제법에 저촉돼 포기했다.

5월엔 시 의회가 종각 건립비 관련 추경예산 통과 과정서 '사업 재검토' 판정을 내렸다. 건립장소를 둘러싸고 "신청사냐 구청사냐"는 의원들 논란 끝에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그러나 며칠후 시 의회는 구청사에 종을 설치키로 결정하고 예산안을 부활, 통과시키는 촌극을 빚었다.

지자체들의 종 건립은 1993년 경남 창원시가 시작한 후 새천년을 앞두고 2000년 전후로 충북도 등 5곳에서 잇따랐다.

현재 광주광역시가 1980년 민주화 운동을 기념해 '민주의 종'(총 사업비 17억4000만원)을 11월 완공 목표로 만들고 있다. 3년 전부터 사업이 추진돼 수억원의 성금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 시민의 종은 무게 18.5t으로 종 제작 6억5000만원, 종각 건립 7억여원 등 시 예산 17억원이 소요된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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