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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고향<57>풍천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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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명당 유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성이 풍천임씨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처럼 세인에게 실제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리학의 대가 녹문 임성주형제와 임헌회등 수많은 거유·석학을 배출한 집안이 바로 풍천임씨다. 조선조에 상신 1명, ,문과급제자 1백44명을 배출한 풍천임씨는 성종∼연산군대에 임사홍부자가 잠시 전횡해 것을 빼고는 주로 선조이후의 조선후반기에 세력을 떨혔으며 벼슬보다는 학문을 숭상하는 이가 많았다. 인구는 10여만명. 양주·아산·부여·보령·금산·김제·나주·밀양·의성·경주·제주등지에 주로 살고 있다.
성별인구순위 45위다
풍천임씨의 시조는 임온. 그는 중국 소흥부자계현에서 고려로 건너와 6세손 임주에 이르기까지 황해도 풍천에서 내리 살게되면서 풍천임씨가 비롯 됐다고 전해지나 후손들은 이들 선대가 꼭 중국인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도래에 양론>
풍천부북박달산도곡리에서 발견된 임도·임천유의 비와 지석, 경주불국사에 소장된「경상도선생안」에 임주의 세계가 분명히 기록돼있어「중국도래설」은 당상한 의아점이 있다는것.
고려충렬왕때 안찰사를 지낸 임주의 아들 임자송(충숙왕조시중판삼사사·서하부원군), 임자순(민부전서)대에서백파와 중파로 나뉘면서 고루 인물을 배출, 번성하게 된다.
임사홍일가의 사건으로 풍천임씨는 다소 명예가 손상된 느낌이지만 그 뒤 임자송의 7대손인 죽애 임설(문정공)의 후손과 임자순의 5대손 사명당을 비롯 ,6대손 임유겸(소간공) 임유손(감찰)형제의 후손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와 임사홍일가의 허물을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중파 시원인 임자순은 향등 두아들을 두었는데 향의 현손 임응규가 바로 전설적 인물인 사명당이다.
그는 서산대사의 으뜸제자로서 임진왜난이 일어나자 홀연히 승복을 벗고 의병장으로나서 수많은 적을 무찔렀고 일본에 건너가 덕천가강과 담판, 인질로 잡혀간 3천5백여명의 동포를 구출하기도 했다.
또 홍경래난때 박천군수로 포로가 돼 갖은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 굽히지 않은 불굴의 선비 임성고와 그의 아들 임태영, 한말의 의병장 임철준등은 모두 사명당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호국정신을 몸으로 실천한인물이다.
임온의 13세손 중파 임유겸은 공조·호조판서와 경기도관찰사·한성판윤을 두루지낸 권신...
그의 직계 임추·임권·임병·임건·임간등 다섯 아들, 임호신·임보신·임중신·임수신·임예신등 손자, 증손 임광등 후예들이 모두 높은벼슬을해 풍천임씨의 가문을 빛냈다.
임유겸의 동생 임유손의 가계도 임현·임전·임홍망·임태춘등 석학과 문장가가 끊이질 않았으며 19세기후반 성리학의 대가 임헌해가 학자로서 크게 돋보였다.
16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접어드는 3백년동안 13세손 임명필의 세아들 임윤·임설·임여 3형제에서 비롯되는 학풍은 임성주형제, 임헌회에 이르러 극치를 이뤘으며 사림을 풍미하게된다.

<임사홍허물.덮어>
임윤의 아들로 영의정을 추증받은 임국로의 아들 임몽정은 대사성을 지냈고 그의 조카 임유후는 도승지로 만휴당집이란 명저를 남겼다.
임설(명종조 한성판윤)의 후손임숙영(인조조·지평)임의백(효종조·공조참판)임방(경종조·우참찬)임승등도 학문 또는 벼슬로 유명했다.
특히 임의백의 현손 임성주·임정주형제는 임씨가 낳은 대표적인 성리학자.
임성주(숙종27년∼정조12년)는 율곡의 학풍을 이은 주기철학의 거봉.
경학과 성리학을 규합해 주기설을 확립하고 녹문집을 남겼으며 조선성리학 6대가의 하나로 손꼽힌다.
임정주는 정조의 스승으로 정치·경제·군사·역사를 강론했으며 정조가『당대의 석유로 정주뿐』이라고 칭찬했을 정도였다한다.
녹문임성주의 누이윤지당 임씨는 여류학자로 유명하다.
한편 17세기후반 임설의증손 남곡 임한백은 인조∼현종대에 8문장의 하나로 손꼽혔으며 한성부판윤 임상원도 당대의 대문장가였다.
특히 그후손이 내리9대나 관계에 나간 임노·임익상과 임헌회등은 윽별히 남대(학행이 높아 사헌부의 장령·지간의 관직에 추전된 사람)로 천거돼 벼술을 할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임정주는 정조스승>
임씨문중에서 유일하게 정승에 오른 사람은 임백경. 임설의 후손으로 고종때 우의정에 올랐다.
해방후 제헌의원·초대 상공부장관을 지낸 임영신도 풍천임씨. 이박사의 총애속에 여성계와 교육계를 주름 잡았으며 중앙대학교를 설립했다.
정계영수급으로 서울시장를 지낸 임흥순, 실업가임봉순, 대전시장임지호, 제주지사임관호, 숙대총장임숙재등은 모두 해방이후 돋보이는 활동을 하다 타계한인물.
농림부장관·자유당중앙위부의장·국회부의장을 지낸 임철호를 비롯, 임문환(전농림부장관)·임성희(전문공부장관)·임용순(전국회의원)·임병수(건국회의원)등과 임성재(충북지사)·임철순(국회의원)등은 관계에서 크게활약했거나 현재 활동하고있는 인물들이다.
대법원판사를 지낸 임항준(변호사)·임두빈(변호사)·임승균·임휘윤·임승순·임석재·임창원·임성재등이 법조계에서 크게 돋보이는 활동을 하고있다.
이밖에 임경빈(서울대농대교수)·임중권(중대교수)·임달호(한대학생처장)등이 학계에서, 임창재·임창순등이 한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임희준(한일소주사장)·임택근(전문화방송사장·교보상무)·임태건(진양산업대표)등 실업계에서도 다수가 활동하고있다.<다음은 나주정씨>

<고침>
82년7월10일자성씨의고향<정선 전씨>중전준은「전집」으로 오산은「도산」,정선전씨 집성촌은「완산파 집성촌」으로, 22대 종손 호열은「태규」, 전악삼형제는「종형제」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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