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장애인 피하지 않고 동정도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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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특수교사인 홍혁씨(오른쪽)와 아들 홍신군.

미국 워싱턴주 페더럴웨이시 라코타중학교 특수교사인 홍혁(47)씨는 8년째 미국 초·중·고교에서 장애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20대 초반에 미국 유학을 떠나 컴퓨터공학을 배운 그는 졸업 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입사했다. 홍씨의 인생행로를 첫아이가 바꿔놓았다. “다섯 살 때 유치원 교사로부터 ‘자폐증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부모 탓이란 생각에 자책감이 밀려왔죠. 장애는 누구 탓이 아니고 삶의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격려해준 동료들 덕에 힘을 냈습니다.”

 그는 사표를 내고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뒤 교사가 됐다. 4일 전화통화에서 홍씨는 “학생, 학부모가 장애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한국과 미국이 확연히 다르다”고 소개했다. 또 “한국처럼 ‘내 집 대문 앞에 특수학교가 웬 말이냐’ 같은 플래카드가 나붙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홍씨는 “미국에선 학부모, 학생, 주민 모두 장애인을 피하지 않고 불쌍하다는 듯 무작정 동정하지도 않는다. 더불어 사는 일원으로 존중해준다”고 말했다. 고교생인 아들 신이는 지난 학기 매주 사흘간 집 근처 유통매장에서 두 시간가량 짐 정리를 했다. 매장 측이 사회적응 기회를 제공한 덕분이었다. 홍씨는 “미국에선 장애인은 일처리가 더뎌도 기다려주는 게 일반적인 규범”이라고 말했다.

 홍씨의 아들에게 최근 초등학교 동창이 찾아왔다. 신이는 여전히 간단한 단어밖에 말하지 못하지만 그와 어려움 없이 어울렸다고 한다. 그는 “장애인 자녀 때문에 이곳으로 이민 온 가족들도 꽤 있다. 한국과 달리 자녀가 부모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어 만족스러워한다”고 덧붙였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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