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북미·6자회담 삼두마차 끄는 동력 서울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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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64)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일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상상력과 담력을 갖는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남북관계를 개선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와 같이 가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북·미관계 개선, 6자회담 재개를 통한 비핵화가 삼두마차인데 이를 돌리는 동력은 서울에 있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1·2차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했다. 기업인들(구본무 LG 회장,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외하고는 유일하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미국·중국 정상과 돈독한 관계를 맺는 등 지금까지 ‘외교자본(diplomatic capital)’을 축적해 놓고도 활용을 안 하고 있다”며 “이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지금까지 쌓아 놓은 외교자산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지금껏 쌓아온 외교자산의 적극 활용을 주문한 문정인 교수. [강정현 기자]

 -김정은 신년사 뒤 남북이 대화 분위기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는데 악재 아닌가.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미 소니사 해킹을 북한 소행이라고 적시했고, 비례적 대응을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다고 보긴 힘들다. 핵·미사일, 동계 군사훈련 등 여러 측면에서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보인다면 미국은 그에 상응해 더 큰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전적 포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본다. 결국 우리 의지와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는 거다. 북한이 좋은 행동을 보이고, 우리 정부가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미국의 행정명령이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 그 정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사이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방안이 있나.

 “북한의 신년사에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가장 큰 문제라고 돼 있으니까 적대시 정책을 낮춰주는 외교를 하면 된다.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일종의 산파역을 우리가 하면 된다. 현 단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건설적 일원으로 유도하려면 4강국에 대한 의존외교가 아니라 주도적 관리외교가 필요하다. 특히 대미외교가 가장 중요하다. 북·미 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그래서 관계 정상화를 하게 되면 별도의 평화체제도 필요 없다. 하지만 그걸 풀어줄 수 있는 건 현재 미국 내에선 불가능하다. 워싱턴에서 북한과 대화하자는 사람이 거의 없다. 북한의 2·29 합의 파기에 대한 배신감이 아직도 크다. 결국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호소해 입장을 바꾸자고 해야 한다.”

 -북·미관계의 정상화까지 추진하는 게 맞나.

 “핵심은 남북이다. 박근혜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해나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미 ·중 과의 양자외교를 통해 외교적 자본을 잘 쌓았기 때문에 한국이 중심이 돼 삼두마차를 움직일 수 있다. 결국 원동력은 서울에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골든타임은 언제까지인가.

 “2월 하순부터 키 리졸브 연습을 하고 3월 중순이 되면 독수리훈련이 본격화한다. 2월 중순까지는 어떻든간에 남북이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서라도 만나고 조율해야 한다. 북한의 공격적 의도가 약화되면 우리도 그에 맞춰 군사훈련을 낮게 하면 된다.”

 -남북 간 막후 접촉의 필요성도 있나.

 “북한은 의심이 많은 나라라서 신뢰를 구축하는 게 힘들다. 그런데 비공식 막후 접촉이 중단된 상태에서, 공식 접촉이란 하나의 윈도(창)만 갖고 북측과 대화하려고 하니까 어려워지는 거다. 공식적으로 만났을 때는 미디어 환경 때문에 서로 경직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국가 이익의 극대화라는 대승적 목표에 따라 대통령은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했는데.

 “북한의 요구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첫째 한·미 연합군사훈련, 둘째 대북전단, 셋째는 흡수통일 의도를 버리라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풀 수 있다고 본다. 첫째는 군사회담을 비공식으로 할 수 있다. (훈련) 강도를 낮추는 부분은 고위급 회담을 해서 얘기할 수 있다. ‘삐라’도 우리의 안보라는 공공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헌법적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흡수통일의 인상을 주지 않으려면 드레스덴 선언이나 통일준비위원회의 활동이 결국 6·15, 10·4 공동선언의 연장선상이란 것을 강조해야 북한 측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글=유지혜·천권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문정인(64) 연세대 교수=김대중 정부의 대북 기조인 ‘햇볕정책’의 이론 구축에 기여한 국제정치학자. 참여정부에서도 동북아시대위원장(장관급)을 맡아 정책 조언을 했다. 1·2차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가했다. 현 정부에선 통일준비위원회 외교안보 분야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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