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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언어폭력, 팬은 무조건 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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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일 경기 도중 코뼈를 다친 KCC 하승진이 여성팬의 비난을 듣고 격분했다. 진행요원들이 하승진을 말리고 있다. 선수만큼 팬도 매너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앙포토]

프로농구 KCC 하승진(30·2m21cm)이 여성 팬과 승강이를 벌인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 스포츠의 관전문화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승진은 지난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전 4쿼터 3분경 리오 라이온스(28·삼성)의 팔꿈치에 코를 얻어맞았다. 코뼈가 부러졌고 피가 쏟아졌다. 응급치료를 받고 라커룸으로 걸어가는 하승진을 향해 삼성의 한 여성팬이 “다리라도 부러진 줄 알았네. 엄살 피우지 말라”는 야유를 보냈다. 분노한 하승진은 관중석으로 돌진하려다 진행요원들이 막아 코트를 떠났다.

 하승진은 종아리를 다친 후 3주 만에 복귀한 경기에서 열심히 뛰었지만 코뼈 골절상을 입었다. 마음은 더 다쳤다. KCC 관계자는 “하승진이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다고…’라며 대성통곡했다. 라커룸 밖까지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코뼈 교정 수술을 받은 하승진은 말도 제대로 못한다. 3주 후에나 코트로 돌아올 수 있고, 시즌이 끝난 뒤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여론은 대체로 여성 팬의 잘못을 지적하는 쪽이다. 농구 팬들은 “상대 팀 선수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구장 1층 플로어석은 선수들 숨소리까지 들려 선수와 팬이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04년 미국프로농구(NBA) 인디애나 소속 론 아테스트(36)는 상대 팬이 던진 물컵에 맞자 관중석으로 달려가 주먹을 휘둘러 잔여 73경기 출전 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프로축구에서는 2007년 수원 소속 안정환이 서울과 2군경기를 하다 한 여성팬으로부터 “마누라가 예쁘면 다냐” 는 야유를 들었다. 안정환은 관중석으로 뛰어들어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한국축구가 발전이 안 된다”며 따졌고, 벌금 1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프로야구에서는 1999년 롯데의 펠릭스 호세가 물병을 던진 삼성 팬을 향해 방망이를 던졌다가 10경기 출전정지를 당했다. 팬들이 몰지각했고, 선수도 정면으로 대응한 경우다.

 프로농구연맹은 현장 관계자들 의견을 종합해 하승진의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다. KBL은 하승진에게 경고 수준의 징계를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 면전에서 언어폭력을 가한 팬에게도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내 프로농구에서 팬이 징계를 받은 적은 없다. 지난 4월 스페인 프로축구 바르셀로나의 다니 아우베스(32·브라질)에게 바나나를 던져 인종차별 행동을 한 팬은 평생 비야레알 홈경기 출입금지 조치를 당했다.

 하승진이 팬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건 잘못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농구인은 “스포츠 선수도 감정노동자다”며 “국내 최장신 센터가 여성팬에게 돌진하려 한 건 프로답지 못하다”고 아쉬워했다. 감정을 누르고 냉정하게 대처했다면 프로농구의 품격을 지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승진이 빠진 KCC는 4일 창원 LG에 59-77로 져 9위(9승24패)에 그쳤다. 원주 동부는 고양 오리온스를 71-67로 꺾었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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