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종장-2인칭 문화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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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기를 1인칭의 글이라 한다면, 편지는 이인칭의 글입니다. 그리고 일기가「고백의 글」이라 한다면 편지는 어떤 대상을 자기에게로「부르는」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인칭도 이인칭도 아닌 삼인칭의 글. 그것은 객관적인 보고서, 다큐먼트와같은 글입니다.
얼굴없는 자들을 향해서 쓰고있는 글, 과학시대의 글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2인칭의 글을 선택했다는 뜻이며 동시에, 1인칭적인 독백의 세계나 삼인칭, 또는 무인칭적인 싸늘한 객관의 세계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옛날의 시들, 향가나 여요의 시들은 대개가 이인칭적인 발상에서 씌어진 글들이라 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자연을 멀리 떨어져있는「그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바로 자기의 동반자, 언제나 자기곁에서 그 부름소리를 듣고있는 이웃으로 생각했던 까닭입니다.
현왕생가나 정읍사를 읽어보십시오. 신라인들이나 백제인들에게있어 달은 그냥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름소리에 의해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시속의 달은 언제나 존칭호격인「-하」로 표현되어있읍니다.「달하 노피곰 돋아셔 머리곰 비치오시라.」이렇게 그들은 낭랑한 목소리로 달을 향해서 불렀던 것입니다.
신라·백제처럼 먼 삼국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곧잘 자연을 이인칭으로 불러왔읍니다.「달아달아 밝은 달아!」는 우리가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가 아닙니까. 그리고「비야비야 오지말아라」나「새야새야 파랑새야」와같은 그리운 그 노래들은 우리가 누님들과 함께 즐겨 부르던 민요들입니다.
산·냇물·꽃·작은 조약돌-. 우리는 자연의 온갖 것들을 친구의 이름을 부르듯, 그명사아래 호격을 붙여서 말했었지요. 이를테면 하늘의 높은 별이나 바다너머의 바람들에 편지를 썼던 것이나 다름없읍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이제는 날이 갈수록 이인칭적인 세계-「나」와「그」를 연결하는 무지개같은 이인칭적인 글은 우리곁을 떠나고 있읍니다.
호격으로 자연을 노래했던 민요의 시대가 사라져버렸다는 증거이지요.
동시에 그것은 곧 중세적인 연금술의 시대가 끝나고 과학의 시대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지요. 연금술의 시대는 인간의 정신과 물질(자연)이 서로 떨어져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연금술사들은「달하 노피곰 돋아셔 머리곰 비치오시라」라고 자기의 소망을 이야기했던 백제인들과 마찬가지로 흙과 들을 합해서 자기의 꿈을 속삭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자크·반·네네프」는『연금술사의 실험실은 무엇보다도 우선 기도실이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바슐라르」는 현대과학자의 실험실과 연금술사의 그것을 비교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일찌기 연금술사의 시대만큼, 헌신과 성실과 인내력과 자성한 방법으로 일에 열중하는 기질이, 직업과 그렇게 일치했던 일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오늘날의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깨끗이 일에서 몸을 털고 일어날수가 있는 것이다.
감정생활을 과학적 생활에 끌어들이려는 것은 하지않는다. 현대의 화학자들은 저녁이 되면 회사에서 퇴근하는 것처럼 실험실을 나온다. 그리고 가정의 식탁으로 돌아온 그들에게는 이미 연구와는 다른 별개의 고뇌나 기쁨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지요. 현대 과학의 실험실은 삼인칭적인 객관의 세계, 오로지 지적인 작업에 불과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현대문명을 이룩한 객관적 인식이란게 싹틀 수 있었던거지요.
그러나「연금술」은「바슐라르」의 말대로『인문이 자연을 이용하는 것보다 자연을 사랑하는 시대에 군림했던 것』입니다. 물질들은 살아있었고 모든 것의 내부에는「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연금술을「금속의 태생학」이라고도 불렀던 것이 아니겠읍니까?
현대과학자와는 달리 연금술사들은 물질속에 인간을, 생명을, 기쁨이나 슬픔같은 감정과 의식을 깊이 깊이 각인시켰고, 또 그 영혼의 대화에 의해서 그 딱딱한 금속들의 태안에 새로운 물질을 잉태시키려고 했지요. 그들은 수태고시자 들이었읍니다. 연금술의 세계에서는 돌들도 나무처럼 자라고 꽃으로 변용하며 열매로 응고되는 생성의 변화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연금술사들은 물질을 삼인칭적인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당신」이라고 부르는 일인칭의 존재로 다루고 있기때문에 현대의 과학자와는 달리, 그것들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깊은 법열을 가지고 실험을 해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인칭의 과학이 삼인칭의 과학이 되면서부터, 법열의 감동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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