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중앙신인문학상]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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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당선 소감] "내 문학의 더듬이는 인간"

내 몸은 옥상의 안테나다. 불현듯 내게 와서 나를 짓밟고 가는 시를 만나기 위해 외롭게 서 있어야 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온몸을 떨고 있어야만 했다. 시를 쓰기 위해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한때, 나의 시는 내 위선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줄 수 있는 알록달록 포장지였다. 하지만 그러한 나를 끝없이 부정하면서 얻은 것은 '불안'이었다. 이 '불안'은 예민한 것이어서 신기하게도 말 걸어오는 사물과 대면할 줄 알고, 거미줄처럼 견고하게 짜인 세상에 머뭇거릴 줄도 안다. 내 더듬이는 '인간에 대한 시'를 쓰라고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인간을 위한 시'를 쓸 수 있길 나는 바란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나는 평생 시를 써야 하는 저주에 걸렸다. 이 저주가 풀리면 나는 바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두고두고 내게 주어진 천형을 스스로 풀어가라는 뜻 깊은 기회로 받아들이고 싶다. 아울러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먼저 나의 부모님과 친척들께 감사한다. 죽음을 담보로 핍진하게 써야 한다던 박주택 선생님과 내 어둠의 등대였던 동인 사시미(思詩美)와 현대문학연구회 선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내게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은 나의 벗 정구영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하늘에서 나를 보고 있을 오빠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시 심사평] 활달한 시어…상상력 독특

어떤 심사자리이든 군계일학의 응모자를 만나는 것은 심사자의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만그만한 원고들을 쌓아 놓고 며칠을 숙고한 끝에 심사위원들이 간추린 시편은 박성현, 이해존, 박민규, 지주현, 김원경 제씨의 작품이었다.

박성현씨의 시에서는 주제를 해석하는 견고한 시심이 읽혀졌다. 그럼에도 시어의 운용이나 상상력의 틀이 거기 걸맞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낡은 직유의 잦은 출현 또한 눈에 거슬렸다. 이해존씨는 습작의 강도를 엿보게 하는 고른 수준의 작품들을 응모하였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낯익은 풍경을 애써 지워버리려는 용기가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하리라 판단되었다. 동일한 시편으로 이곳저곳의 심사자리를 기웃거리는 것도 삼가야 한다. 박민규씨의 작품에서는 극적 구성에 의탁한 묘사의 힘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장황한 산문적 할애로 서정이 압도되어버리는 심각한 불균형만 의식한다면 그만의 개성을 확장해 가리라 믿어졌다.

지주현씨의 응모작들은 독자를 감응시키는 시적 진정성이 발군이었다. 그것은 '나(내)'로 시작하는 시화(詩話)의 생생한 체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이런 상황을 제쳐 두고 누가 절박한 노동의 현장에서 우리 시가 이제 한걸음 비켜서도 된다고 말하느냐. 매 시편마다 수사적 짜임새에서의 허점을 가리고도 남을 감동이 넘쳤지만, 산문체의 풀어진 리듬을 다잡을 습작에의 강도를 더 지켜보려고 아쉽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응모자의 다음 작품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당선작으로 선고한 김원경씨의 시편에서 취할 점은 활달하고 독특한 상상력이다. 그의 작품들 또한 최근의 젊은 시인들에게서 자주 엿보이는 혼몽(昏)된 환상을 읽게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당선작에서 살펴지듯, 신선한 언표로 현실을 읽어내고 어른이 된다는 갈등과 고뇌를 시라는 틀 안에 가두어 놓은 그의 능력을 신뢰해 보기로 했다. 이야기하는 방법의 새로움에만 경도되어 수사적으로 들뜨거나 과장될 때에는 겉으로 드러낸 환상성과 내심의 진실을 함께 헤칠 수 있다는 점도 당선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신경림.김명인(대표집필:김명인) ?예심위원=이광호.나희덕.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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