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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이미지, 저항에서 참여와 책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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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성탁
사회부문 기자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신년 어젠다 ‘이젠 시민이다’에서 시민은 누굴 의미할까. 취재에 응한 대학교수 등은 정부나 시장의 힘만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없다며, 그 대안으로 시민을 꼽았다. 하지만 시민은 자연스레 시민단체를 연상케 했고, 반대와 저항의 이미지가 함께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선 정부가 모든 결정을 내리고, 시민단체 또는 주민단체는 들러리로 세우는 일이 흔하다 보니 시민은 이런 이미지로 형상화됐다.

 하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서 시민과 시민교육의 개념을 새롭게 잡게 됐다. 선진국에선 이미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는 시민이 국가와 손잡고 난제를 해결해나간 사례가 많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송전탑 건설 기관이 환경영향평가 초안부터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주민공청회를 열 때면 지역 언론을 통해 열심히 홍보했다. 병원·주택과 일정 거리에 선로가 들어서면 철탑 높이를 높여 전자계 피해를 줄이겠다고 이해를 구했고, 지역교육청은 송전선로와 학교가 얼마나 떨어져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미국에서도 송전탑은 기피 시설이지만 시민과 협의해 건설에 성공했다.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영국에선 국가나 지자체가 공기오염 관련 정책을 수립한다면 관련 시민단체 10곳을 심의위원회에 의무적으로 참여시킨다. 시민단체들은 토론회를 여는데 회원으로 가입한 시민들이 유급휴가를 받아 참가한다. 이런 절차는 시간이 걸리지만 대안까지 찾는 성과를 낸다. 이를테면 원자력발전소 찬반 토론 과정에서 시민들 스스로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을지까지 고민하게 된다. 무상복지로 국가재정이 어려워져도 세금을 내겠다는 의견은 나오지 않는 국내와는 대조적이다.

 본지의 ‘이젠 시민이다’ 기획보도를 본 한 고교 교사는 “사회·도덕도 암기과목으로 전락했는데 지금부터라도 사회 규범과 책임지는 자세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전해 왔다. 영국에서 자란 한 독자도 “영국 중학교에선 선생님과 학생이 정당의 정책과 이념을 놓고도 토론한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보육원에서 20명 학생들에게 자전거 5대를 줬더니 처음엔 힘센 아이들이 차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세 명씩 붙어 한참 얘기하더니 한 명이 한 바퀴씩 순서대로 타는 모습이 나타났다. 영국 시민들은 지역 시민단체 서너 개에 가입해 있지만 한국에선 지갑에 신용카드나 포인트 적립 카드만 많을 뿐 시민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는 이가 많지 않다. 새해엔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개인부터 참여하는 시민이 될 준비를 해봤으면 한다.

글=김성탁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