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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은 정치공세 … 국정조사 활성화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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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정감사가 22일부터 진행 중이다. 올해는 또 얼마나 호들갑을 떨고 이렇다 할 결론 없이 국정 혼란을 야기할지 걱정이 앞선다. 각 상임위에서 국감 증인으로 협의 중인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정책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로 끝날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지만 국정감사제도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이다. 지난달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개최된 이 문제에 대한 한국헌법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미.일.독.불 학자들에 의해 명백히 입증됐다. 국회가 국민 대표 기관으로서 국정을 감시.통제하기는 하지만 감사 기관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국정 감시는 상임위원회 등을 통해 상시로 하는 것이지 기간을 20일 정해 놓고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마비시켜 가면서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국정감사제도는 제헌 헌법 당시 선진 외국의 국정조사제도를 오해해 잘못 도입된 제도로 다음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있어 그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대상기관 선정, 증인 채택의 정치성 등이 문제되는데 올해에도 500개 가까운 기관에 17개 상임위원회가 하루에 수개 기관을 동시에 감사해야 하기 때문에 졸속감사, 겉핥기식 감사가 불가피한 것이다. 둘째, 정책.민생 감사가 아니라 90% 이상이 여야 정치공세로서의 정치감사로 운영되기 때문에 본회의 대정부 질문과 예결위 정책질의와 대부분 중복된다. 만약 국감 기간 20일을 예산심의를 위한 순수한 정책질의 기간으로 활용한다면 선진 외국과 같이 행정부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통제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수박겉핥기식 예산 심의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셋째, 국회의원의 특권의식을 부추기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계기가 된다. '한건주의' 감사는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에 편승해 트집잡기, 흠집내기 부실감사로 이어지기 일쑤이고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부패의 고리가 되며 여야 정쟁을 야기시켜 감정의 골만 깊게 만들고 국회의원 스스로의 위신과 명예를 실추시킨다.

결론적으로 국정감사는 행정부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즉 국회는 현재에도 미국 대통령제의 국회 권한에 없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언제든지 각부 장관을 출석시켜 필요한 사항을 정책질의하고 관련 서류의 제출을 요구하는 등 상시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로 업무를 정지시켜 가며 하는 국정감사는 행정부 독립성을 침해하게 된다. 또한 국회는 특정사항을 지정해 감사원에 감사 보고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의심이 있다면 정식으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우리의 국정조사제도는 그 발동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 재적 4분의 1 이상으로 요구하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무늬는 갖추었으면서도 실제 활동의 근거가 될 국정조사계획서 승인을 국회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완전 독일식으로 그러한 국회의 일반의결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정조사권을 발동시키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즉 국회 재적 4분의 1 이상의 소수 정파가 원하는 대로 증인 선정 신문 방식을 포함해 국정조사권을 쉽게 발동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입법부와 행정부가 정당을 통해 융합되는 현실에서 권력분립론의 핵심은 기능적.실질적으로 다수 여당에 대한 소수 야당의 확실한 통제 장치가 필요하고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국정조사권이라는 것이다. 미국 의회 상임위원회의 각종 청문회의 활성화가 그것이다. 따라서 헌법 개정 이전이라도 여야가 합의해 불합리한 국정감사는 자제하고 그 대신 국정조사를 활성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관희 경찰대 교수·한국헌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