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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은 불변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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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가인하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유가는 어디까지 내려갈 것이며, 그것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또 유가인하에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은 기준유가의 30달러 인하에 합의했다는 설도 있다. 이런 문제등에 대해 에너지 전문가인 이회성박사(동력 자원 연구소 정책 연구부장)로부터 알아본다. <편집자 주>
-유가인하의 초읽기는 다시 며칠 뒤로 미뤄지게 됐습니다. 국제원유가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23일의 리야드회의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에미리트(UAE)연방·카타르·쿠웨이트·이라크 등 5개국 석유상들이 「유가인하원칙」에만 합의하고 내주 중에 다시 제네바나 빈에서 OPEC 13개국 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인하폭을 결정키로 한 것은 이들이 앞으로 좀더 시일을 두고 나이지리아와 협상을 벌일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가격 결정권을 취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아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현재 배럴당 34달러인 것을 30달러로 내리고 나이지리아 원유가를 다시 올리도록 하든지 그것이 안되면 28.5달러로 내려 나이지리아 원유와의 가격차이 1.5달러를 종전대로 유지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장해 온대로 가격차이를 3달러까지 벌려 기준유가를 27달러로 떨어뜨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두째번 선택은 이미 나이지리아가 경고한 대로 본격적인 「가격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 확실하므로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30∼28.5달러의 새 기준 유가를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많다고 봐야지요.』
-일부에서는 이같은 유가하락이 계속돼 배럴당 15달러까지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데….
『그같은 논리는 현재 OPEC의 원유 생산비용이 배럴당 불과 l달러에 지나지 않는다는 근거에서 나온 것인데 너무 지나친 전망입니다. 현재 북해산 원유의 생산비용은 최고 배럴당 20달러이므로 유가가 25달러이하로 떨어지면 그간의 투자비용도 회수할 수 없게돼 생산을 중단하는 유전도 나타나게 됩니다. 게다가 북해 유전 개발에 투자한 것은 대부분이 서방 석유재벌(메이저)들이므로 유가가 25달러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OPEC의 붕괴 가능성은.
『비록 OPEC가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하더라도 세계 원유 매장량의 60%를 보유하고 있는 OPEC의 잠재적 영향력은 앞으로 석유수요가 늘건 줄건 여전히 강력할 것입니다.
더구나 이미 선진국에서는 원전·유연탄발전소건설, 석탄액화사업등의 탈석유투자가 거의 중단된 상태고 또 앞으로 OPEC각국의 공업화에 따른 OPEC자체의 석유수요와 개도국석유수요는 계속 증대될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세계석유수요는 다시 크게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단기간의 가격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더더구나 OPEC의 붕괴란 생각할 수 없읍니다.』
-유가하락을 코앞에 둔 지금 정부나 가계·기업의 최대관심은 이같은 국제원유가의 장·단기전망보다는 역시 당장의 국내유가조정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유가는 어떻게 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습니까.
『원유가하락폭의 일부만을 국내소비자가격에 반영한다는 원칙은 옳다고 봅니다. 기업이나 가계로서야 원유가가 떨어지는 폭만큼 그대로 속시원히 국내유가를 내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가의 장기적 안정을 확신할 수 없는 마당에 소비절약·에너지합리화 투자등을 당장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수는 없읍니다.
그렇다고 가계나 기업쪽에 유가하락의 혜택을 인색하게 돌린다는 것도 정부로서는 설득력이 없읍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세금감면과 병행한 국내유가의 소폭조정입니다. 즉 국내유가는 원유가하락폭의 일부분만을 반영해서 내리되▲그 나머지는 대부분 관세로 흡수해서 세수부족을 메우고▲대신 법인세나 소득세를 그만큼 내려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유가하락의실질적혜택이 기업이나 가계에 충분히 전달돼 경기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에너지절약기조를 해치지도 않을 수 있읍니다.
관세를 거둬 양특적자를 메우는등 단순히 재정적자를 보전하는데만 쓴다면 국내유가의 소폭조정은 설득력을 잃고 말지요.
반면 상당부분을 기금으로 거둬 에너지투자·석탄산업보호등에 쓰자는 생각은 기금의 용도가 탄력적이지못하다는 단점도 있고 또 시장경쟁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유가인하로 석탄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우려도 있을수 있지만 조금만 길게 보면 석탄가격이 함께 내려감에 따라 수요도 다시 현 상태로 회복할것이고 또 앞으로 석탄에너지는 점차 다른 에너지로 바뀌어갈 것이 확실한 마당에 정부가 자원배분의 왜곡을 심화시킬뿐인 보조금형식으로 특정에너지산업을 공급자의 측면에서 보호할 필요는 없읍니다.
실업등 사회적인 부작용을 우려한다면 오히려 정부의 보조금은 석탄산업종사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질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하는데 적극적으로 쓰여져야 합니다.』
-유가인하에 따라 에너지수급 장·단기계획, 탈석유자원개발등의 정책은 어떤 방향전환이 필요하겠습니까.
『에너지원별 수급 구조·장기수급예측등이 이번 유가인하로 크게 바꿜 필요는 없습니다. 유가가 하락하면 석탄값·가스값등도 시장원리에 따라 조정되지 않을수 없으므로 상대적인에너지소비구조가 별로 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기회에 심각하게 검토해보아야할 것은 투자규모가 엄청나고 그 회임기간도 긴 원전·유연탄발전소건설계획입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원전건설계획은 앞으로 국민생활수준이 나아지고 환경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얼마나 크게 늘어날지 모르는 환경투자비용을 거의 감안하지 않은 것이니까요. 원전·유연탄발전소의 공해방지시설투자는 앞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것입니다.
반면 석유발전소의 공해방지시설은 그 투자규모도 상대적으로 작고 이미 충분히 알려진 노하우입니다. 원유값안정을 계기로 고유가시대에는 경제성검토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환경비용」개념이 새로이 도입되어야합니다.』
-앞으로의 유가조정방향, 이번 유가하락이 국내경제전반에 미칠 영향등에 대해 나름대로 종합적인 정리를 한다면….
『유가조정의 대전제는 현재 값이 비싼 벙커C유·LPG·휘발유를 대폭 내려 국제가격수준에 접근시켜야한다는 것입니다.
갈수록 국내에너지소비체계는 선진국의 에너지소비체계에 가까워질 것이므로 국제·국내가격의 불균형이 계속된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니까요.
한편 이번 유가인하가 유가자율화를 앞당기는데 좋은 계기가 될 것은 확실하지만 유종별로 가격을 자율화시킬 수 있는 완전경쟁체제가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또 유가인하는 통화정책을 여유있게 운용할수 있도록 해주고 28.5달러정도까지의 유가하락은 실보다 득이 많아 성장률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GNP 0.22%성장등의 계산수치는 별 의미가 없읍니다.
중동건설의 타격은 지금까지 나온 예상들보다 훨씬 심각할 것으로 봅니다. 성장기여효과를 분석하기보다는 유가하락의 부작용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신중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김 수 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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