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6개월 대북정책 골든 타임 … 정부 속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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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4 핵심 국정과제 점검회의에 참석해 “새해에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정홍원 국무총리(대통령에 가림), 박 대통령,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종근 기자]

정부가 세밑에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2014년을 사흘 남겨놓고 내년 초에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류길재(통일준비위원회 정부 측 부위원장) 통일부 장관은 29일 오전 판문점 채널을 통해 북한 노동당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앞으로 회담 재개를 제안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냈다. 내년 1월 중 서울이나 평양, 또는 남북한이 합의한 장소에서 회담을 열자는 내용이다. 예상치 못한 속도 내기다.

 류 장관은 이날 정종욱 민간 부위원장 등 통일준비위 핵심 인사들이 참석해 새해 사업 구상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공개했다. 통일준비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런 만큼 북한에 대한 제의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정부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북한 국방위원회 간에 지난 2월 물꼬를 튼 판문점 고위 접촉을 재개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써왔다. 하지만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10월 말~11월 초’ 개최하겠다는 합의를 깨면서 2차 고위급 접촉은 불발됐다. 그러던 차에 통일 준비 차원에서 남북 대화와 민간 교류, 경협 등을 추진할 통준위를 새로운 대북 창구로 정한 것이다. 기존 외교·안보부처 대신 통준위를 내세워 북핵·미사일 문제 때문에 대화가 좌초되는 걸 피하는 일종의 ‘투 트랙’ 접근이다. 정부 당국자는 “통준위는 핵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며 “지난 10월 4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일행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했을 때 가동된 류길재 장관과 김양건 부장 간 ‘통-통(통일부-통전부) 라인’이 통준위로 이름을 바꿔 작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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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관급 고위 접촉을 장관급 당국회담으로 격상시키면서 틀에 변화를 가한 점도 새롭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활발했던 장관급 회담으로 격을 높인 모양새다. 판문점 접촉 대신 서울·평양을 만남의 장소로 제안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산가족 상봉을 의제로 예시하면서 ‘남북 간 상호 관심사’를 폭넓게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북한이 요구한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사안도 다룰 수 있다는 의미다. 통준위가 내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제시한 다양한 남북 공동 교류·협력 사업도 이 자리에서 논의될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해온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과 독일 드레스덴 대북 제안(인도적 지원 등)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도 이 대화 테이블에서 마련할 수 있다고 통준위 측은 밝히고 있다.

 대북 제의 시점으로 연말을 택한 건 새해 벽두부터 당국 간 대화 재개와 남북 교류에 시동을 걸겠다는 뜻이다.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부에는 내년 상반기가 북한 관련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골든 타임’이다. 정부 당국자는 “대통령 신년 회견으로 발동을 건 뒤 후속 조치를 마련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다가는 자칫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북한이 선뜻 응할지다.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후 남측의 회담 제의를 일단 거부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수용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자신들이 대화 국면을 주도하는 구도를 만들겠다는 의도에서다. 정부는 설 명절(2월 19일) 때 이산 상봉을 성사시키려면 준비기간 등을 감안해 1월 중에는 북한의 답변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글=이영종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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