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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칙서의 행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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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임 총독의 정초>
아편 전쟁 때의 주역이던 임칙서가 호광의 총독으로 있을 때 적은 일기가 남아있다. 여기 보면 그는 정초에 제일 바빴다.
정월 초하루에도 그는 새벽같이 신령님과 조상에게 항향을 한 다음에만 고궁에 들어가서 경하의 예를 했다. 이어 공자를 모신 문묘에 가서 향을 올렸다.
초이틀에도 그는 바빴다. 그는 새벽부터 왕황묘에 가서 옥황상제에게 행향을 했다. 진사출신의 문관인 임칙서가 문묘를 찾은 것도 당연하지만 최고신인 옥황상제에게 인사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다음으로 그는 문장과 학문을 다스리는 문창제를 모신 문창궁에 가고, 이어 관우를 모신 무묘에 참배하러 갔다. 관우는 공식으로는 무신이요, 나라에 큰 난리가 있을 때마다 무묘에서 승리를 기원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관우는 어느 사이엔가 재신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만의 어느 절에 가봐도 관제묘가 있다. 초이틀의 행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화충·용신·여덟가지 농사 신을 두루 참배하고 다녔다. 화재와 수해가 없기를 빌고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메뚜기를 지키는 신인 유맹 장군을 찾아가서 메뚜기의 해가 없기를 빌었다.
초 3일에도 행향할 신령들은 많았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이 건강제의 제삿날이라 그 다음날부터 천후궁·동정묘·강신 등을 차례로 찾아 행향했다. 천호는 항해의 여수이며 동정묘에는 동정호의 신령이 모셔져 있다.
이어 임칙서 총독은 성황 묘에 참배하러 갔다. 성황야는 저승의 관리다. 임칙서는 이승의 총독이지만 저승에도 호광 총독이 있다. 이승에서 일을 잘 하려면 당연히 그의 도움을 빌어야 할 것이다.
그가 이날 돌아야 할 신령들은 풍압·운신·뇌신. 우신 등…이렇게 많았다.
신령들에 대한 행향은 이날로 대충 끝났지만 초9일은 또 옥황상제의 생신이다. 이날에는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서 예배를 했다.
이상은 모두 자기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보다도 민생을 위한 기원들이었다. 따라서 지방 장관으로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행사였다.
얼마 후에 그가 제출한 아편에 관한 의견서가 황제의 마음에 들어 당장에 ??차 대신으로 뽑혀 광동에 파견되었다. 그토록 정성스레 신령들을 찾아다니며 기원한 효험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오늘을 사는 한국의 장관들은 새해라고 해서 찾아다닐 신령님들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한가하지는 않다.
새해 업무계획 보고라는 큰 일을 치러야하는 것이다. 그게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되었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이를 위해 각 부처위 장관 이하 모두가 만사를 제쳐놓고, 때로는 「침식까지도 잊고」준비에 몰두해 봤다고 한다.

<장관의 낭독 연습>
올해에는 그동안 겉치레에 치우쳐왔다는 평을 들어온 브리핑 차트가 없어진 것만이라도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장관들의 걱정이 멀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신문 보도로 보면 부처마다 여러 차례의「모의시험을 겸한 예행 연습」등으로 초 비상태세였다고 한다.
한나라의 일년지대계를 꾸미는 것이다. 그 중에는 여러 해를 두고 나라살림을 크게 움직일 정책도 들어있을 것이다. 아무리 신중을 기하고, 아무리 공들여 다지고 또 다져도 뭔가 부족한 듯 하고 어딘가에 하자가 일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임칙서 총독처럼 영현을 빌 문묘도 없고 문창궁도 없으니 더욱 마음이 죌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낭독 연습」까지 한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좋게 보면 얼마든지 좋게도 볼 수 있지만 나쁘게 보면 이른바「브리핑 행정」의 구습이 엿보이는 것도 같다.
보고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알맹이요, 뼈대다. 알맹이가 알차고 뼈대가 단단하고 줄기가 반듯하다면 가지가 다소 꺾이고 잎이 헝클어졌다 한둘 문제될게 아무 것도 없다.
엊그제 취임한 장관도 아니고, 평소에 투철한 비전과 소신을 갖고 일해온 분이라면 보고의 뼈대는 언제누가 물어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뼈대만 옳다면 다소 낭독이 어색하고 더듬거린다 해도 좋다. 미처 대답 못하는 것이 있어도 좋다. 장관이 꼭 알아야할 일이 있고 잘 몰라도 상관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장관은 시험관 앞에서 면접시험을 보는 수험생일 수는 없다. 그는 자기 소관업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는 자부를 가지고 있어 마땅하다. 그게 또 국민이 바라는 참다운 장관상이다.
당초에 브리핑 차트를 없애기로 한 것도 겉만 번드레한 이른바「브리핑 행정」의 폐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보고하는 자리만 잘 넘긴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장관이 정말로 걱정해야할 일은 보고가 끝나는 바로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업무계획 보고의 참뜻은 새해에 할 일을 대통령에게 밝히고, 이를 통해 온 국민에게 알리는데 있다.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따라서 국민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브리핑을 얼마나 멋지게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에게 가장 큰 관심이 가는 것은 정부 각 부처가 하겠다고 밝힌 계획이 앞으로 얼마나 찰 실현되느냐는데 있다.
예전의 예를 보면 업무보고를「잘 끝낸」부처는 잔치기분에 휩싸이고 한달 넘어 준비에 지친 국장들은 하루 이틀 일손을 쉰다.

<어제와 오늘의 차이>
임칙서 총독은 정초에만 바쁜게 아니었다. 문묘에는 여행 중만 빼놓고는 매달 초하루에 다녔다. 무묘에는 매달 15일에 참배했다. 3, 4월달은 농사가 잘 되기를 빌기 위해서 무묘 대신에 선농단과 사직단에 갔다.
이 밖에도 봄에는 비가 안 오면 비가 오라고 기우제를 지내야했고 비가 너무 오면 비가 멎으라고 신청을 하기 위해 성황묘가 아니면 사직단에 갔다. 날씨가 개면 갠다고「사청」을 해야했다. 그리고 또 이틀이 멀다고 집안 제사들이 있었다. 모두 거를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었다.
이렇게 행사에 쫓기고 있으면 국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청말의 가장 뛰어난 장관이었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공무가 그리 벅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농사만 잘되면 되었다.
그의 일기에서도 행향을 한 날에는 출청하여 공무를 보았다는 기록은 따로 적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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