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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어린이 생일 파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생일을 축하해….」
서울 대치동Y아파트 전재성씨(36·회사원)집에 6명의 남녀꼬마들이 케이크가 놓인 작은 상에 둘러앉아 합창을 하고있다.
케이크 위엔 「Happy birthday to you」가 초컬리트로 쓰여져 있고 6개의 촛불이 켜져 있다.
장남 국종이의 6번째 생일. 처음으로 친구들을 초대토록 해 이른바 「생일파티」를 벌이는 중이다.
병아리 음정의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자 꼬마들이 촛불을 끈다.
국종이가 무릎걸음으로 반쯤 일어나 마지막 촛불을 『후욱-』끄고는 뭔가 말을 할듯할듯하다 씨익 웃고 앉아버린다. 이어 손뼉소리. 아침내 되뇌었던 『와줘서 고맙다.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놀자』라는 인사말이 쑥스러워 끝내 입밖에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꼬마손님들은 저마다 들고 온 미니카·스케치북·키티수첩 등 선물을 내놓고 케이크 과일을 먹으며 병원놀이를 1시간쯤하다 돌아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어린이들 사이에 친구초대생일파티가 유행하고 있다.
초대 못 받아 토라져 『아이에게 무슨 생일파티냐』는 아버지의 반대와 『생일파티 않는 집이 어디 있느냐』는 어머니의 고집으로 시작된 새 풍속은 이제 어린이들의 당연한 의식으로 격상될 만큼 터를 잡았다.
4∼5세 꼬마들에서부터 국민학교와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자기생일이면 으례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초대받은 아이들도 선물꾸러미를 준비할 줄 안다.
파티참석인원은 6∼10명선. 동네친구나 급우 중에서 특별히 친한 남녀들만을 고른다.
초대받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면 토라지는 경우도 많다.
부반장인 지은양(11·Y국교 4년)은 지난해 30여 차례 생일초대를 받았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데다 말솜씨도 좋아 초대명단의 단골.
그러나 막상 10월말 자신의 생일을 맞아 고민거리가 생겼다. 20명 이상 초대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절대비밀보장을 다짐하고 짝과 반장 등 10명만을 은밀히 불러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생일 다음날 들통났다. 한 꼬마의 초대자랑이 한입씩 건너간 것이다. 초대받지 못한 어린이들은 따돌림당한 괘씸한 감정이 작용, 입을 비죽거렸고 말조차 걸지 않았다.
생일파티는 시골에까지 보급돼 경기도성남시 김성희씨(31·여)는 막내(7)의 생일날 뜻밖의 곤욕을 치렀다.
막내가 느닷없이 『엄마가 파티를 열어주기로 했다』며 동네친구 7명을 끌고 들어왔기 때문.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김씨는 크게 당황, 부랴부랴 음식을 장만해 꼬마손님에게 점심대접을 했다.
생일초대와 선물하기가 유행하면서 학교 앞이나 아파트단지의 쇼핑센터엔 「선물의 집」코너가 성업중이고 생일축하카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공부 잘해야 "단골">
생일선물은 1천원 내외 짜리가 주종. 국민학교 어린이들의 경우 공책·연필·필통·크레파스나 그림물감 등 학용품이 대부분이고 지갑·인형·과학조립장난감 등도 선물로 인기 있다. 유치원꼬마들은 미니카·스케치북·하트모양의 초컬리트 등이 가장 많다.
카드는 자신이 직접 그리거나 부득이한 경우 문구점에서 구입한 카드를 전하는 것이 통례.
최근엔 5백∼9백원짜리 미제카드가 유행하고 있다.
『오늘로 7세가 되는 어린이를 위한 7자놀이』 『10세보다 더 좋은 나이는 없다』는 등의 영어문귀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카드를 뜻도 모르고 주고받는다.
한양쇼핑센터 내 선물코너 C점 종업윈 한종숙양(24)은 『저금통을 깬 듯 동전을 한 무더기씩 들고 와 친구선물을 사는 어린이가 하루 10여명』이라며 『손거울·하트보석·하와이목걸이·패널·남태평양패각 등 최고 1만원까지 값비싼 선물을 사는 어린이가 점차 늘고있다』고 했다.
도병호씨(41·상업·서울청담동)는 『막내딸 현정양(9)이 생일 한 달 전부터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피아노에만 달라붙고 새로 사준 옷을 몇 번씩 꺼내 입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며 생일파티의 유해론을 편다.
도씨는 어린 딸이 상처를 입을까봐 나무라지도 못하고있다며 『보다 건전하고 허영심을 자극하지 앉는 조촐한 생일행사가 아쉽다』고 했다.

<점차 비싼 선물 골라>
전 서독특파원 이모씨(47)는 『서독에선 초대받은 아이가 스푼·책·털이개 등을 준비해가 그 집의 풍습과대대로 내려오는 가훈 등을 익힌 뒤놀던 자리를 깨끗이 청소·정돈하곤 돌아온다』며 요즘의 어린이생일은 서구식도 아닌 국적불명의 것이라고 했다.
연세대 김경희 교수(여·아동학)는 『종전의 어른중심행사에서 아이들중심의 행사가 되어 친구 사귀는 법, 선물의 개념 등을 알려주는 등 사회성 발달에 좋은 면도 있지만 케이크 자르기나 선물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꺼림칙하다』며 『보다 내용 있는 생일잔치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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