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젓가락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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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포크와 나이프는 찢기 위해서 있다. 쇠고기의 덩어리를 찢고 들판과 강물과 숲을 찢는다. 성과 성을, 도시와 도시를, 그리고 마을을 찢어 분할한다. 이제는 하늘의 별들을 찢는다. 포크를 손든이 우주로 향해있는 시대-은하수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한다. 벌써 그것은 생활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ET붐도 그 하나가 아닌가.』
과장된 표현이라고 비웃지 마십시오. 서양문화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현대문명은 한덩어리였던 자연과 인간의 영혼을 잘게잘게 찢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가족이 찢기어 핵가족이 되고 원자가 찢기어 핵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번쩍이는 이 거대한 포크와 나이프 대신 두젓가락, 그것도 은이 아니라 나무로 깎아만든 젓가락을 생각해 보십시오. 젓가락은 한짝만으로는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지요. 짝을 이루었을때만이 제몫을 합니다.
그렇지요. 젓가락하나로 밥을 먹거나, 반찬을 집어보십시오. 그것처럼 불편한게 없습니다. 따로 떨어져있는 두 개의 막대가 하나로 짝을 이루었을때, 그 문화는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한짝이 되고 들판의 불과 강물의 물이 합치어 안개처럼 한세계가 되는 것-젓가락의 문화는 갈라서 있는 것들, 따로 외롭게 떨어져 있는 것을 짝을 지어주는 문화입니다.
부-자라든가, 부-부라든가, 형-제라든가, 그리고 주-용이라든가,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는 한쌍의 관계를 하나의 낱말로 나타내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포크와 나이프는 찢는데는 편리하나 자잘한 덩어리를 합쳐서 집는데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젓가락은 찢기에는 거북해도 자잘한 것들을 함께 합쳐서 집는데는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닙니다.
근대의 자아라는 것은 너와 나를 쪼개는데서부터 싹튼 것이지만 앞으로 올 시대는 외로운 자아가 타자와 융합되는 실존적 교포위에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젓가락문화가 포크의 문화보다 우세하다거나, 혹은 그 반대라거나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서로의 특성을 서로가 잘 개발해서 살려갈 때, 현대문명은 새로운 「합」의 명제를 찾아낼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려가요의 아름다운 시가 「동동」의 마지막 노래는 젓가락에 대한 것입니다.
「십이월분디(산초)나무로 깎은/아아, 진상할 소반위에 있는 젓가락다와라!/님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들어 얼렸더니/손(객)이 가져다가 무는군요!」
젓가락은 사랑의 이미지로 노래되어 있습니다. 가지런히라든가, 열렸더니(교합)라든가, 그것은 「짝」을 짓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놓은 젓가락을, 그 마음을 엉뚱한 손(용)이 집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젓가락문화의 운명을 보는 것 같은 노래입니다.
엉뚱한 손이 와서 공들여 깎은 젓가락을, 물어 입에 넣는 아이러니. 그래서 「짝」의 문화는 분일의 문화로 바뀌어버린 우리시대의 역사와 그 상황…현대에도 그런 「동동」의 노래는 있을 것입니다.
같은 젓가락문화권에 있는 일본의 하이꾸에도 「겨율아침에 내 두 살박이 손을 잡고 젓가락질을 가르친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풀도 꽃도 없는 삭막한 겨울, 그러나 그속에서도 어린 것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생기와 기쁨을 노래한 것이지요. 앙증맞은 어린애의 손가락위에 마디굵은 아버지의 손가락이 포개집니다. 젓가락질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몸이 되는 이미지로 그려져있는 것입니다.
분석의 끝에는 종합이 옵니다. 지금까지는 분석의 시대였고, 찢는 힘의 문화였지만, 이제는 그것을 하나로 뭉쳐가는 종합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동안 서구문명을 몸에 익혀왔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서 먹으나 방바닥에 앉아서 먹으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을 상앞에 앉혀놓으면 진땀을 흘립니다.
종합의 시대, 정말 세계가 한마음이 되어버리는 그 글로벌피플의 가능성은 우리쪽에 더 많은 것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르 버리라는 시대착오자의 넋두리가 아니라, 우리의 손에, 분명히, 그것도 정식으로 젓가락이 들려있을때에, 포크와 나이프의 의미도 또한 그 존재이유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것을 알고 가르치는 것이 남의 것을 몰아내고, 담을 쌓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찢는 문화」에 속하는 것이지요. 동양과 서양의 문화까지도 찢지않고 행복한 짝을 만들어 완성시키는 것, 그것이 젓가락문화의 마지막 장에 있는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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