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수령 1백년이 넘는 거목, 고목들이 보호수로 지정되리라 한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보호수로 지정할만한 나무는 전국에 걸쳐 9천5백16그루. 앞으로 시, 군, 읍, 마을나무로 품격을 매겨 해마다 생장 실태를 점검할 예정이다.
전국 최고령의 나무는 익히 알려진 대로 울릉도의 향나무. 나이가 2천년쯤으로 추산된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면 신라 시조 박혁거세 시절. 백제는 온조가 비로소 건국할 때다. 실로 나무 한 그루가 민족의 성장과 영욕을 모두 지져본 셈이다.
어느 시인은 푸른 솔은 늙어도 강물은 천년을 흐른다고 했다. 그러나 나무의 나이도 이쯤 되면 무시 못할 일이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오래 사는 나무의 나이와 비교하면 2천년은 아무 것도 아니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화이트산맥의 원추형 소나무. 대략 4천6백년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이름도「므두셀라」(Methselah)라고 지었다.「므두셀라」는 9백69세까지 살았다는 전설의 인물.『창세기』에 나오는 사람이다.
캘리포니아주는 바로 거목의 고향이다. 이 지방의 나무인「시쿼이어」(sequoia)는 거목, 고목의 대명사다. 제일 키 큰 나무가 훔볼트군에 있는「최 거목」. 높이가 1백11m다.
덩치가 가장 큰 나무는 시쿼이어 국립공원의「셔먼장군」둘레가 24m다. 호사가들이 이 나무의 무게를 계산해 보니까 2천1백45t이나 됐다.
이들 나무는 예외 없이 당국의 엄중한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관광 자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늙어 죽는 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는 듯. 4천9백년의 나이로 추정된 원추형 소나무가 얼마 전 톱으로 잘렸다. 시에라네바다산맥의 원추형 소나무가 바로 그것. 거목 번호 WPN114호다.
우리 나라의 최 거목은 전남 광산군 대림면 칠석리의 은행나무.
높이가 30m, 둘레가 12·6m다. 비록 세계적인 기록과 비교하면 난쟁이에 불과하나 우리로선 아주 소중한 나무다.
예로부터 우리에게 나무를 숭앙하는 토속신앙이 있었다. 길흉을 나무에 의탁해 예측한다. 기복의 대상도 됐다.
국가의 환난과 함께 붉은 수액을 흘린다는 전남 광산군 간곡면 송대리의 은행나무, 마을을 지킨다는 전남 구비읍 봉서리의 느티나무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설이 얽혀있다.
최근엔 현대과학까지 동원해 고목의 수명을 늘리려고 애쓴다.
산소주입기로 숨을 쉬게도 한다. 대기오염이 심할수록 나무 살리기도 어렵다.
민족과 함께 사는 고목, 거수가 72년 조사에서는 1만3천7백65그루가 있었는데 이번엔 9천여 그루로 줄었다. 아무래도 선조로부터 꾸지람을 들을까봐 두렵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