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깊이보기 :미국서 논란 뜨거운 '지적설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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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8월 1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텍사스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을 함께 가르쳐 학생들에게 논쟁이 무엇인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언급함으로써 생명의 기원 논쟁을 더욱 가열시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언론들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국내에서도 최근 지적설계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이란 무엇인가. 생명체의 기원과 그 복잡성을 진화론의 방향성 없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주장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지적설계론은 출발했다. 진화론을 넘어서는 생물학적 복잡성은 어떤 지적(Intelligent) 원인에 의해 설계(Design)되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적설계론은 두 가지를 기초로 한다. 첫째, 지적 원인이 존재한다. 둘째, 설계된 결과를 객관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초에 입각해 설계된 사실만을 다룰 뿐이며, 설계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설계했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검증 가능한 분야만 다루기 때문에 논란이 있는 우주론이나 지구의 연대, 지질학 같은 분야는 제외한다. 현재로는 생물학적 정보와 복잡성에 연구를 한정한다.

지적설계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 예가 박테리아의 편모(그림)다. 그림은 마이클 베히 교수가 세포 시스템에서 설계된 증거의 예로 제시한 박테리아 편모의 모터 구조다. 여기서 강조되는 개념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Irreducible Complexity)'이다. 분자기계시스템을 이루는 복잡한 부품 중 어느 하나를 제거하면 그 기능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는 중간체가 필요한 우연의 진화 메커니즘으로는 생성될 수 없다고 본다. 곧 미리 설계되었다는 증거다.

◆ 지적설계론, 왜 논쟁의 대상인가=반대론자들은 지적설계론을 '세련된 창조론'이나 "종교를 과학 교과서에 도입하려는 터무니없는 음모"로 평가한다.

근본적으로 지적인 원인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과학의 한 형태며 종교적 관점을 포함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며 생물학 교과서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적설계론자들은 생명체의 복잡성이 진화론적 설명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검증 가능한 설계이론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적 원인은 없고 자연적 원인만을 가정하는 진화론만이 유일한 과학 이론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지적설계 논쟁이 2000년대 들어 미국 여러 주 교육위원회의 교과서 개편 논쟁과 맞물리면서 일반인들과 언론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지적설계론 대 진화론' 논쟁은 예전의 '천동설 대 지동설'과 같은 종교 대 과학의 논쟁에 불과하다는 주장(진화론 입장)이 있는 반면 진화론과 새로운 대안 과학 이론 간의 대립이라는 주장(지적설계론 입장)이 엇갈려 있다.

◆ 지적설계론, 과학인가=과학으로서의 지적설계론은 지적 원인과 방향성 없는 자연적 원인을 구분하는 객관적 방법을 정보이론을 통해 제시한다. 법의학.암호학.고고학.외계지성탐사(SETI) 같은 분야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과학적 관찰 방법에 기반하여 설계된 증거를 찾는다. 수학자인 윌리엄 뎀스키는 복잡 특수한 정보 (Complex Specified Information)는 설계된 정보임을 증명했고 DNA 정보가 이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러나 주류 과학계에서는 물질 현상만을 다루는 자연주의 방법만을 정상과학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지적설계론을 과학적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비과학으로 여긴다.

지적설계론이 과학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지적설계론자들은 신다윈주의 진화론이 과학인가라고 되묻는다. 지적설계론자들은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 체계가 아닌 유물론적인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한 이론 체계며, 따라서 자연주의로 한정하는 과학의 범위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명한 진화론 과학철학자 마이클 루스 교수는 올해 출간한 '진화-창조 논쟁 (Evolution-Creation Struggle)'이란 책에서 "대부분의 진화론자가 진화의 과학적 관점보다 종교적 관점에 치우쳐 있고, 결국 진화주의를 종교로 갖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지적설계론과 창조론의 차이=창조론은 성경에 의거해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를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조론은 지구 및 우주의 연대에 대한 해석 차이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지구의 나이를 수만 년 이내로 보는 '젊은 지구 창조론'과 수십억 년으로 보는 '오랜 지구 창조론'이다.

이에 비해 지적설계론은 창조론이 제기하는 성경적 주장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한다. 지적설계론은 생명체의 복잡성이 실제로 설계되었는지 진화와 같은 우연의 산물인지를 탐구할 따름이다.

따라서 창조론이 말하는 개별적 생명체 종류대로의 창조나 진화론에서 말하는 생명체의 공통 조상 이론에 대해서도 현재의 지적설계론으로는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입장을 유보한다. 다만 지적설계론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혼합이론인 소위 하나님이 진화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생명을 창조하였다는 '유신론적 진화론'은 명확하게 거부한다.

◆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의 차이=지적설계론이 진화론과 완전히 대립되는 이론인가에 대한 답은 '진화'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에 따라 다르다. 진화가 관찰 결과인 '동일 종 내의 시간에 따른 변화' 내지는 '유전자 풀에서의 빈도수의 변화'와 같은 의미라면 지적설계론은 진화를 인정한다. 그러나 만일 진화가 '모든 생물은 오로지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의한 메커니즘에 의해 만들어졌다'라는 신다윈주의 의미라면 지적설계론은 진화론과 완전히 대립된다.

◆ 학교 교육=미국에서는 각 지방 자치 교육위원회에서 교과서 개편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으므로 지적설계론의 등장 이후 진화론 위주의 교과서 개편을 둘러싼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펜실베이니아 도버 카운티와 같이 지적설계론을 의무사항으로 가르치는 곳을 비롯, 텍사스 교육위원회같이 헤켈의 배아발생도 등 학술적으로 오류로 밝혀진 것은 삭제하도록 하거나, 오하이오주 교육위원회같이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하여 진화론을 심도 있게 가르치고 필요하면 대안 이론을 같이 가르치도록 하는 곳도 여러 곳 있다.

미국의 지적설계론 연구 및 홍보를 주도하고 있는 시애틀의 디스커버리 연구소(www.discovery. org/csc)는 학술지 게재 등 지적설계에 관련된 연구들이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위원회의 결정을 둘러싼 논쟁 및 법적 소송에서 지적설계론을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디스커버리 연구소는 과학에 대한 정의를 수정하고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반대 이론을 포함하여 진화론을 더욱 심도 있게 가르치라는 일명 '논쟁을 가르치라 (Teach The Controversy)' 법안에는 찬성하지만, 지적설계론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 의미와 전망=그동안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신다윈주의 진화론이 학술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기원에 관한 유일한 이론이었고 이에 대한 공식적 비판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이론 자체의 완벽성보다는 물질 현상만 다루는 현재의 자연주의 과학 패러다임 내에서는 다른 대안 이론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 - 지적설계 논쟁은 그런 의미에서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 대해 말한 패러다임 논쟁이다. 오랫동안 정상과학으로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진화론의 대안 이론으로서 지적설계론은 검증 가능한 과학 프로그램을 갖춘 최초의 목적론적 (유신론적)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이 과학이론을 넘어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건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지적설계론이 미칠 사회적 파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지적설계론을 직접 언급할 만큼 지적설계 논쟁은 이제 미국만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향후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할 과정일 것 같다.

이승엽 교수 (서강대 기계공학·지적설계연구회 회장)